끊임없는 친족 성폭력…여가부 “10년 공소시효 연장·폐지 추진”

  • 뉴시스
  • 입력 2020년 11월 11일 05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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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고통 오래 지속…통과되도록 법무부와 논의"
피해자 55.2% '10년 후 상담'…공소시효는 최대 10년
"가족 떠나면 진학, 대출도 막히니 오래 걸릴 수밖에"
힘 얻는 공소시효 폐지론…피해자 수기 모금도 활발

여성가족부는 11일 아버지가 수년간 친딸을 협박해 성폭행 하는 등 반(反) 인륜적 범죄에 대한 사법 정의 실현을 위해 현행 7~10년인 친족간 성폭력 범죄 공소시효를 연장하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가부는 국회에도 연령과 관계없이 공소시효를 10년 연장하는 법률 개정안이 발의돼 있는 만큼 법개정을 위해 주무부처인 법무부와 협의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법무부는 공소시효 연장 또는 폐지에 공감한다면서도 적극 나서지 않고 있는 데다, 법원행정처는 다른 성범죄와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어 난관이 예상된다.

공소시효 10년 연장 법률안 발의됐지만…법원행정처 “실효성 의문”

여가부 유정미 권익지원과장은 이날 뉴시스와 통화에서 “친족 성폭력의 공소시효 폐지나 연장에 찬성하는 입장이며, 법무부와 법 통과를 위해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유 과장은 “친족 성폭력 피해자는 그 사실을 바깥에 알리기 어려워하고 고통이 장기간 계속되는 속성이 있다”며 “그런 측면에서 공소시효 폐지나 연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은 4촌 이내 친족이 폭행·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경우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형사소송법을 보면 이 경우 공소시효는 범죄 행위가 종료된 시점부터 7~10년이다.

성폭력처벌법 특례조항에 따르면 미성년자의 경우 성년인 만 19세가 될 때까지 공소시효가 진행되지 않고, 피해자가 13세 미만인 경우 공소시효가 없다.

친족 성폭력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사람은 지난 5년간 매년 500명 이상으로 집계됐다.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15년 520명, 2016년 500명, 2017년 535명, 2018년 578명, 2019년 525명이다. 친족간에 성폭력 범죄가 발생할 경우 문제를 수면위로 드러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친족간 성폭력 범죄 가해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제반 사정을 감안해 같은 당 이종배 의원은 지난 6월 친족 성폭력 범죄 공소시효를 10년 추가 연장하는 특례를 추가하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정작 법조계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검토보고서를 보면, 법원행정처는 “다른 범죄와의 형평에 어긋나는 결과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개정안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있다”는 입장이다.

법무부는 “입법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공소시효 정지, 배제 규정이 여러 차례 법 개정을 통해 보완됐으니 시행 성과 분석을 통해 공소시효 추가 확대 필요성 여부를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피해 후 상담까지 10년’ 지난해 55.2%…여성계서 커지는 폐지론

여성계에서는 친족 성범죄의 특성상 공소시효가 폐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폐쇄적인 한국 사회의 가족 문화로 피해자들이 성범죄에 대응하기까지 공소시효 10년을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해 진행한 친족 성폭력 상담 87건을 분석해보니, 피해 이후 상담까지 10년 이상 걸린 사례가 48건으로 절반 이상(55.2%)을 차지했다.

학교 내 성폭력 피해자와 비교해보면, 피해 후 한달 이내 상담한 사례가 전체 73건 중 20건(27.3%)으로 가장 많고 10년 이상은 2건(2.7%)에 그쳐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부소장은 “(친족 성범죄 피해로) 가족을 이탈하면 대출도 막히고 대학 진학도 어려워지는 것과 같이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여전히 강력한 규범”이라며 “가부장적 문화로 가족 내 성폭력이 발생하기 쉽고, 여성들이 경제적인 상황을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운 취약한 구조 때문에 문제 제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자신이 당한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metoo) 운동 이후,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도 경험을 털어놓거나 처벌을 요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 11월 ‘아버지란 이름의 성폭력 가해자를 벌해 주십시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은 10만9696명의 동의를 모았던 게 대표적이다. 청원인은 글에서 자신이 12세부터 19세까지 친부에게 성폭력을 당한 뒤 미국으로 떠났으며, 17년만에 귀국해 경찰을 찾았으나 “공소시효가 지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친족 성폭력 생존자 12명이 쓴 수기집 ‘아무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 이야기’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지난 10일 오후 4시30분 기준 목표 금액(200만원)의 575%인 약 1150만원을 모았다. 익명의 다수가 모금을 통해 책의 독립출판을 도운 것인데 총 523명이 후원했다. 모금은 오는 14일까지 진행된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도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온라인 전시회 ‘시간을 거스르다’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공소시효 폐지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문구를 공모받기도 했다. 피해자와 생존자가 직접 참여한 예술 작품도 함께 공개될 예정이다. 전시는 이르면 11일 공개된다.

김 부소장은 “가족에 의존하며 살아가게 하는 강력한 규범이 작동하는 현실 속에서 공소시효로 인해 신고할 수 없게 된 피해자가 좌절한 사례가 있다”며 “가해자의 영향력도 여전하고 피해가 반복될 우려가 있는 만큼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가부 또한 범죄 실태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별도의 연구용역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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