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트럼프와 시진핑의 ‘디지털 패권 싸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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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산업이 뛰어난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계시장에서 도태되는 경우를 일컬어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 부릅니다. 1990년대 이후 자신들의 기술 표준만을 고집함으로써 세계시장에서 고립된 일본의 전자 산업을 빗대어 나온 말입니다. 갈라파고스화된 대표적인 일본 제품에는 디지털TV 방송, 내비게이션, 휴대전화 등이 있습니다.

일본은 처음부터 독자적인 기술과 제품을 발전시켜 나갔지만 국제표준과는 어긋나는 방향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내수시장마저 자리를 내줄 위기에 처하게 됐습니다.

갈라파고스는 남아메리카 동태평양에 19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에콰도르령(領) 군도입니다. 살아 있는 자연사 박물관으로 불리는 갈라파고스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준 섬으로 유명합니다. 육지로부터 1000km나 떨어져 있어 독자적으로 진화한 종들이 서식하는 생태계가 형성됐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외부 종이 유입되자 면역력이 약한 고유종들이 멸종 위기를 맞았다고 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점입가경입니다. 세계를 연결하는 인터넷 공간이 양분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22일 미국의 CNBC는 인터넷 공간이 미국과 중국의 주도권 싸움으로 인해 분화하는 ‘스플린터넷(splinternet)’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스플린터넷은 인터넷(internet) 속 가상 공간이 파편화(splinter)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합성어입니다. 중국이 별도의 인터넷 공간을 구축하기 위해 감시·검열 시스템인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을 만들면서 등장한 개념입니다.

중국은 과거 만리장성을 축조해 외적의 침입을 막았던 것처럼 인터넷 통제 시스템을 통해 체제를 위협하는 정보 유입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외국 인터넷 플랫폼에 접속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구글과 페이스북, 트위터 대신 알리바바나 징둥닷컴에서 운영하는 전자상거래 플랫폼 타오바오,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위챗을 사용합니다. 중국은 자국의 플랫폼 회사들로 하여금 정치적으로 민감한 콘텐츠를 자체 검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중국 사이트에서 자국에 비판적인 내용의 기사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은 8월부터 국가안보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중국의 애플리케이션 틱톡과 위챗에 퇴출 압박을 가해왔습니다. 5세대(5G) 장비업계 세계 1위인 화웨이 견제로부터 시작된 디지털 전쟁이 더욱 확대되는 형국입니다. 중국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다른 정보기술(IT) 기업인 알리바바나 바이두에 대한 추가 제재를 예상하는 분석도 나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틱톡이 사용자의 개인정보나 행동 패턴, 친구 관계, 연락처 등을 활용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위챗이 수집하는 사용자들의 안면인식 정보나 음성 등 개인정보도 중국 당국에 의해 활용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디지털 패권 야망과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때리기가 초래할 미래 디지털 시장은 어떤 모습일까요. 중국의 ‘만리방화벽’식 대응이나 미국의 자국 기업 우선주의 모두 개방성과 호환성을 생명으로 하는 디지털 생태계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또 다른 갈라파고스의 운명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트럼프#시진핑#디지털 패권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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