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늘어난 ‘층간흡연’ 민원…관리인 “규제할 법적 근거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1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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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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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아버지도 돌이 안 된 손자를 위해 금연하셨어요. 그런데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담배 연기 탓에 아이 키우기 너무 괴롭습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박모 씨(32)는 요즘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 8개월 된 아이를 키우는 처지라 어느 때보다 깨끗한 환경이 중요한데, 집안 곳곳에서 담배 냄새가 풀풀 풍기기 때문이다. 아래층 이웃이 집에서 담배를 피우기 때문이다. 박 씨는 “지난해까진 괜찮았는데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뒤부터 부쩍 심해졌다”며 “인터넷 커뮤니티에 토로하니 비슷한 고충을 겪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외출 자제와 다중이용시설 이용 제한 등으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크게 늘었다. 그런데 덩달아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들도 증가하며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층간흡연이 층간소음만큼 심각한 분쟁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동아일보가 최근 수도권에 있는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10여 곳의 관리사무소에 문의한 결과, 약 70%가 “코로나19 확산 뒤 흡연 민원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아이를 둔 엄마들이 많이 찾는 온라인 ‘맘 카페’에도 담배냄새에 대한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올해만 흡연 피해를 호소하는 청원이 6건이나 올라왔다.

특히 비말(침방울)이 섞인 담배 연기를 통해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단 사실이 알려진 뒤, 기존의 외부 흡연 공간 이용을 꺼리는 이들이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경기 수원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문모 씨(22)는 “단지 내 흡연 장소가 마련돼 있는데도, 요즘 거기서 피우는 분들이 부쩍 줄어들었다”며 “코로나19 전에도 가끔 힘들었지만, 요즘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냄새 지옥에 빠져 산다”고 하소연했다.

이러다보니 공동주택에서 흡연 자제를 당부하는 공지 방송도 크게 늘어났다. 문 씨의 아파트도 거의 1주일에 한번 꼴로 방송이 나온다고 한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리실 관계자는 “특히 화장실과 베란다 흡연은 환풍구 등을 타고 곧장 위층으로 올라가 원성이 무척 거세다”며 “방송은 물론 방문 요청도 해봤지만 일부 주민은 ‘내 집에서조차 내 맘대로 못 하느냐’며 불쾌해했다”고 한숨지었다.

관리사무소로선 자제 당부 외엔 별다른 조치를 취하기도 어렵다. 현행법 상 개인 사유지인 집에서 흡연을 제한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마포구에 있는 한 오피스텔의 관리인은 “최근에 실내에서 흡연하다가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일도 벌어졌다. 근데 집 주인이 문도 열어주지 않고 자제를 거부했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쉽진 않겠지만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흡연자를 적대시하기보단 지정 공간에서만 피우도록 이끌고, 흡연자 역시 자기 권리만 내세우지 말고 ‘함께 사는 공간’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미국에선 ‘당신이 피우는 담배 연기, 윗집 아기가 마신다’는 캠페인 영상을 공동주택에서 상시적으로 틀어 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윤이 인턴기자 연세대 계량위험관리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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