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백신 줄사망 초비상…“부모님 접종 당장 막았어요”

  • 뉴스1
  • 입력 2020년 10월 21일 17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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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무총리가 21일 오후 세종시 연동면 보건소를 찾아 인플루엔자(계절 독감) 예방접종을 받고 있다. (국무총리실 제공) 2020.10.21/뉴스1
정세균 국무총리가 21일 오후 세종시 연동면 보건소를 찾아 인플루엔자(계절 독감) 예방접종을 받고 있다. (국무총리실 제공) 2020.10.21/뉴스1
서울에 거주하는 이모씨(27)는 백신 사망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지방에 계신 부모님이 걱정돼서다. ‘혹시 벌써 어떤 종류 백신이든 접종하신 게 아닌가’ 하는 우려는 “아직 (접종) 안했다”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일부 안도로 바뀌었다.

이씨는 “백신 상온노출 사고가 있었을 때도 시간을 두고 맞으라고 말해뒀는데 이제는 사망 사고까지 잇따르니 불안하다”며 “어머니께서 몸살기운도 있다고 하셔서 지금은 절대 맞지 말라고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독감’(인플루엔자) 무료 백신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망자가 잇달아 발생하는 가운데, 고령 인구에 사망이 쏠리자 자녀들의 불안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부모세대 접종 예약 취소를 독려하는 자녀들의 하소연이 밀려왔다.

이씨는 “부모님이 60대 후반이신데 고령자 사망사고가 잇따르니 더 걱정이 된다”고 덧붙였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인플루엔자 백신 무료접종이 지난 13일부터 순차 재개된 뒤 이날 오후 4시까지 사망은 9건이 신고됐다.

보건당국은 최종적인 관련성 결론을 밝히지 않았으나 접종 뒤 원인불명 사망 사례이 잇따르고 있는 셈이다.

경기도 광명시에서는 50대 A씨가 숨져 보건당국이 역학조사에 나섰다. 서울에 거주하는 A씨는 지난 17일 관내에서 독감 백신을 접종한 후 사망했고, 광명시가 조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 고양시에서도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을 받은 80대 남성이 사망해 보건당국이 역학조사에 나선 상태다.

대구에서도 70대 남성이 인플루엔자 백신을 무료로 접종한 후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날 낮 12시쯤 대구 동구에 사는 78세 남성 B씨가 집 인근 의원에서 독감 예방 접종을 한 후 이상 증세를 보였고 오후 1시30분쯤 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치료를 받다 12시간 만인 21일 0시5분쯤 사망했다.

노령층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자녀세대의 걱정이 커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 속에서 회복이 더딘 어르신들이 ‘이중고’에 놓였다는 우려다.

직장인 김모씨(28) 역시 부모님과 함께 가기로 한 백신 접종 예약을 바로 취소했다. 학창시절 신종플루 백신 접종 후 일시적으로 호흡곤란 증세를 겪었던 김씨에게 백신 관련 사망 사고는 남의 일이 아니다. 김씨는 “처음에 1,2명 사망했다는 뉴스를 봤을 때는 덜했지만 사망자가 늘어나니까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며 “부모님께서는 연세가 있다보니 더 불안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반면 부모님이 먼저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해 안도하는 이들도 있다.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는 윤모씨(56)는 “아버지께서 최근 건강이 악화돼 안그래도 걱정이었는데 부모님께서 뉴스를 보고 백신 접종을 미뤘다고 먼저 전화를 주셨다”며 “상황이 안정화된 후에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거듭 당부드렸다”고 말했다.

자녀들의 독감 백신 접종을 망설이는 부모들도 늘고 있다.

학부모 김모씨(41)는 “독감백신 접종 앞두고 계속 사망사고 소식을 접하니 망설여진다”며 “요즘 가장 큰 고민이다. 코로나19 때문에라도 맞아야 할 것 같은데 걱정이다”고 했다. 학부모 이모씨(38)도 “올해도 별 생각 없이 아이들 독감백신 접종을 하려고 했는데 뉴스를 보면서 불안해진다”며 “맞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정 장애가 온다”고 했다.

연이은 독감접종 사망 소식에 ‘백신 포비아’가 확산하면서 무료 접종 공간에는 시민 발길이 부쩍 줄고 있다. 전날인 20일 오후 서울 강서구 한국건강관리협회에는 대기줄이 눈에 띄게 짧아졌다.

이곳은 지역 내 독감백신 무료접종 ‘핫 플레이스’로 꼽혔으며, 무료접종이 재개된 일주일 전부터 인파가 몰려 10층까지 줄이 이어졌다. 해당 건물은 10층짜리 건물이지만 이날 대기줄은 길어야 2~3층 수준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도 ‘이례적인 상황“이라며 백신 접종 여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그래도 독감 백신을 맞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정부의 사망 원인 발표 전까지 접종을 자제해야 한다“는 제언도 제기된다.

천은미 이대 목동병원 교수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예상보다 독감 관련 사망자가 많이 나오고 있다“며 ”정부 발표 전까지 기다렸다가 그 이후 접종을 하는 편이 낫겠다“고 조언했다.

천 교수는 ”정부도 사망과 백신 간 인과관계를 비롯한 사인 등을 규명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부검을 해도 파악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해당 백신이 어떤 식으로 유통·조달됐는지 정부가 선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약업계도 이번 사례를 ’이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국내 주요 제약회사 관계자는 ”과거에도 접종 관련 사고가 드물게 발생했으나 올해는 한꺼번에 발생해 진상 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백신 유통‘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정부가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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