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장이 性사건 최종 책임자… 직접 가해땐 대응-감시 불가능

강승현 기자, 이지훈 기자 , 박상준 기자 입력 2020-07-15 03:00수정 2020-07-15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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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의혹]서울시 성폭력 매뉴얼 ‘무용지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고소한) A 씨는 2017년 ‘부서를 옮기고 싶다’ ‘너무 힘들다’고 여러 차례 호소했어요. 박 시장 재임 동안 시장실 앞 데스크 비서직은 늘 어리고 예쁜 여성 공무원만 앉혔습니다. 당시 내부에서도 이상하다고 문제가 제기됐는데 바뀌지 않았어요.”(서울시 전 직원 B 씨)

박 전 시장이 약 9년 동안 재임하는 동안 서울시는 다양한 여성 및 성평등 정책을 내놓았다. 2014년 처음 만든 ‘서울시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도 그중 하나다. 이 매뉴얼은 “조직 내 성희롱 등은 지위나 권력관계를 부당하게 이용해 당사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위법행위”라 규정하고 “타 기관과 차별화된 사건처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이 매뉴얼을 들여다보면 커다란 맹점이 보인다. “사건의 결정과 이행 결과를 서울시장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최종 처리는 시장이 맡는다는 뜻이다. 매뉴얼 어디에도 가해자가 시장일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를 다루지 않았다. 게다가 규정대로라면 A 씨가 피해를 입었을 당시 이를 인지한 직원들은 인권담당관이나 여성권익담당관 등에게 보고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도 이를 시행하지 않았다.


○ “관리 감독 견제할 장치나 기관 없어”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박 전 시장에게 성추행 등을 당했다고 밝힌 A 씨는 서울시청 6층에 근무하는 동안 주변에 여러 차례 피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해당 직원들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구체적인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지만, 비서실 차원에서 A 씨의 피해를 규정대로 처리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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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A 씨와 함께 근무했던 B 씨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연차가 높지 않은 A 씨가 비서실에서 3년이나 근무한 건 매우 이례적”이라며 “시장실이 전반적으로 시장을 잘 따르는 분위기여서 다른 직원에게 피해를 호소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 매뉴얼에 따르면 A 씨의 피해 사실을 인지한 이들은 이를 해당 담당자에게 알렸어야 했다. ‘사건처리 세부절차’의 인지 상담 신고 및 접수 세부 설명에는 “사건의 처리를 원하는 피해자, 대리인, 목격자 등은 고충상담원, 인권담당관(시민인권보호관)에 상담 신청, 신고, 제보를 할 수 있다”라고 돼 있다. 시 관계자도 “내부 규정상 A 씨 상황을 인지했다면 신고하고 정해진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적으로도 비서실 등이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면 방조 혐의 등이 적용될 수 있다.

시청 직원들의 근무 환경을 관리, 감독하고 시장의 업무 수행을 견제해야 할 서울시의회 역시 제 역할을 못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9월 289회 시의회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홍성룡 의원은 오성규 당시 비서실장 등에게 “시장 비서실은 시장의 분신이 돼야 한다. 시장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민주적 수평적 분위기 조성에 힘써야 할 시의원들이 오히려 제왕적 봉건적 자세를 강요하는 메시지를 전했던 것이다.

○ “성(性) 사건의 최고 책임자가 지자체장”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5·수감 중) 성폭행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을 맡았던 서혜진 변호사는 박 전 시장의 의혹이 안 전 지사 사건과 닮았다고 지적했다. 서 변호사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범행 방법과 경위, 폭로 이유, 폭로 후 반응 등이 놀랍도록 똑같다”고 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인 서 변호사는 뭣보다 ‘성폭력 사건 대응의 최고 책임자가 다름 아닌 기관장’인 걸 핵심 병폐로 꼽았다. 서 변호사는 “현행법은 기관장에게 성 관련 사건에 대한 조치 권한과 책임 등을 부여하는데, 기관장이 가해자일 경우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2018년 안 전 지사 사건으로 촉발된 ‘미투 운동’을 계기로 그해 3월 ‘성희롱·성폭력 및 2차 피해 예방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박 전 시장이 직접 지시해 관련 매뉴얼을 강화하고 익명신고제와 전담팀 등을 두는 내용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시장이 가해자일 경우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다.

해당 매뉴얼에 따르면 적용 범위에는 서울시장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조사 결과는 시장에게 보고해야 하며, 사안을 처리하는 ‘성희롱·성폭력 고충심의위원회’ 역시 내부 공무원과 시장이 위촉한 외부 위원으로 구성한다. 정부 직제상 광역자치단체는 행정안전부 등의 지휘도 받지 않는다. 서울시장이 가해자가 되면 이를 처리할 매뉴얼도, 감독할 상급 기관도 없단 뜻이다.

‘조직에 만연한 기관장 보위 문화’도 문제다. 서 변호사는 “시장이 물러나면 함께 일하던 별정직 공무원 등도 지방공무원법상 면직 처리되다 보니 시장에 대한 ‘보위’의 역할이 부여되기도 한다”며 “피해자는 신고할 때 ‘너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다’는 비난까지 감수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고 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현행 제도로는 기관장이 사건을 덮거나 은폐할 가능성이 높다”며 “기관장 관련 사건은 직접 보고하지 않고 상급 기관이나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외부 기관에서 들여다볼 수 있도록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강승현 byhuman@donga.com·이지훈·박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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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서울시.성폭력.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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