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처럼” 불법 개조… 킥보드 시속70km 위험한 질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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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부른 부실 안전관리 실태


“20만 원 더 내면 자동차처럼 달릴 수 있게 해줄게요.”

14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전동 킥보드 판매업체. 사장 A 씨는 “전동 킥보드를 구입하러 왔다”고 하자 불법 개조를 제안했다. 추가 비용을 내면 속도제한장치를 바로 없애주겠다는 얘기였다. 현행법은 전동 킥보드 이용자가 시속 25km 이하로 달리도록 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사고파는 전동 킥보드에는 이 속도를 넘기면 자동으로 전력 공급이 끊기는 장치가 달려 있다.

12일 부산 해운대구에서 한 30대 남성이 전동 킥보드를 타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 같은 전동 킥보드 관련 교통사고는 해마다 늘고 있다. 하지만 전동 킥보드 매장 관계자들은 당연한 듯 불법 개조를 권유하고 있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공유 킥보드 업체들도 이용자들이 주행할 때 갖춰야 할 운전면허증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 마구잡이 불법 개조에 형식적인 면허증 확인

동아일보가 13, 14일 서울 서초구 등에 있는 전동 킥보드 판매업체 5곳을 확인한 결과, 이 업체들은 모두 속도제한장치를 없앤 불법 개조 킥보드를 팔고 있었다.

송파구 A매장 직원은 “장치를 없애는 건 간단하다. 보조 배터리를 추가하면 시속 70km도 가능하다. 단속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자신했다. 광진구에 있는 다른 판매업체도 “킥보드를 사면 장치 제거는 무료”라며 “오토바이만큼 속도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전동 킥보드를 운행할 때 운전면허증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이용객들에게 킥보드를 시간제로 빌려주는 공유 킥보드 업체 중 상당수도 이용자들 면허증을 제대로 검사하지 않았다. 도로교통법상 전동 킥보드는 오토바이와 같이 분류된다. 이용자들은 자동차 운전면허나 원동기장치자전거 운전면허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부산에서 숨진 30대 남성이 킥보드를 빌린 공유 킥보드 업체인 ‘라임’은 이용자의 운전면허 소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한 업체는 애플리케이션(앱)에 가입할 때 이용자에게 면허증 사진을 제출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용자가 다른 사람의 면허증을 제출하고 킥보드를 빌려도 업체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공유 업체 ‘고고씽’은 이용자의 면허증 사진을 최대 24시간 동안 심사했다.

○ 전동 킥보드 타다 사고 나면 배상 폭탄

전동 킥보드를 이용하다 사고를 내면 개인 돈으로 피해를 배·보상해야 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전동 킥보드 이용자는 자동차보험에 의무가입할 필요가 없다. 킥보드 이용자들이 가입할 만한 보험 상품도 마땅치 않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한 대학생이 전동 킥보드를 타다가 보행자와 부딪쳤다. 경미한 부상이었는데도 보험 처리를 못 해 300만 원 가까운 돈을 물어줬다”고 전했다.

전동 킥보드 교통사고는 해마다 늘고 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삼성화재에 접수된 전동 킥보드 이용자의 교통사고 건수는 2016년 49건에서 매년 늘어 지난해 890건을 기록했다. 3년 만에 18배 이상으로 늘어난 셈이다.

한문철 변호사는 “이용자가 전신을 노출한 상태에서 킥보드를 이용하기 때문에 교통사고가 나면 크게 다칠 수 있다”며 “정부가 킥보드 일련번호를 등록하는 방식으로 관리하고 불법 개조를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고 했다.

고도예 yea@donga.com·김태성·박종민 기자
#전동 킥보드#안전관리#교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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