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제주마저 잿빛으로… 전국이 ‘미세먼지 돔’ 속에 갇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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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집어삼킨 최악 미세먼지]

베이징 덮친 미세먼지 5일(현지 시간) 중국의 최대 정치 행사인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열리는 베이징 인민대회당 인근 건물 위에 붉은 깃발이 희뿌연 스모그에 뒤덮인 채 펄럭이고 있다. 베이징=AP 뉴시스
베이징 덮친 미세먼지 5일(현지 시간) 중국의 최대 정치 행사인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열리는 베이징 인민대회당 인근 건물 위에 붉은 깃발이 희뿌연 스모그에 뒤덮인 채 펄럭이고 있다. 베이징=AP 뉴시스
“차를 타고 가는데 사하라 사막을 달리는 것 같았다.”

한반도가 거대한 ‘미세먼지 돔’에 갇힌 5일 인터넷 카페에선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는 글들이 연이어 올라왔다. 시민들은 “우리가 알던 그 봄이 오기는 오는 것이냐”며 우울감과 무력감을 토로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날 하루에만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하는 글이 600여 개 쏟아졌다.

○ 한라산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미세먼지 청정지역으로 여겨지던 곳들도 이날은 예외였다. 강원 강릉에는 올해 처음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려졌다. 주의보는 m³당 75μg 이상의 농도가 2시간 이상 지속될 때 발령한다. 초미세먼지가 시내 전역을 삼키면서 평소 한눈에 보이던 대관령과 짙푸른 동해 바다가 잿빛 속으로 숨어버렸다. 관광객들이 북적이던 경포호나 안목항 커피거리 등도 썰렁했다.

사상 처음으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발령한 제주도 역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한라산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13개월 된 아이를 위해 공기청정기를 샀다는 박모 씨(36·여)는 “제주에 살면서 공기청정기를 집 안에 둘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항공기와 여객선 결항도 잇따랐다. 전남 신안 송공항에서 흑산도로 가는 3개 항로 여객선 4척의 운항이 통제됐고, 이날 오전 6시부터 6시간 동안 전남 목포와 신안, 진도, 영광을 잇는 26개 항로 여객선 47척이 제시간에 출항하지 못했다. 목포운항관리실 관계자는 “오전 한때 안개와 미세먼지가 겹쳐 10∼20m 앞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광주공항에서는 광주발 제주행 항공기 1편, 제주발 광주행 항공기 1편 등 2편이 결항됐다. 무안국제공항에서는 이날 오후 1시 40분 일본 오이타에서 오는 국제선 1편이 운항을 하지 못했다.

공기청정기와 마스크의 판매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마트에 따르면 미세먼지가 전국을 뒤덮기 시작한 지난달 28일부터 5일간 공기청정기와 마스크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464%, 523% 증가했다.

○ 미세먼지에 갇혀버린 한반도

유례없는 초미세먼지의 습격은 바람의 방향과 계절적 영향, 퇴로가 막히는 3가지 악재가 겹친 탓으로 분석된다. 먼저 바람의 방향을 보면 서해상 남쪽에는 시계 방향으로 흐르는 고기압 기류가, 북쪽에는 반시계 방향으로 흐르는 저기압성 기류가 배치돼 있다. 이들이 톱니바퀴 돌듯 움직이며 바람 방향을 우리나라 쪽으로 향하게 하고 있다.

김준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위성 영상을 보면 북한과 중국에 화석연료를 태울 때 나오는 일산화탄소(CO) 분포가 크게 나타나는데, 이 오염물질이 봄바람을 타고 한반도에 쉽게 유입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렇게 밀려온 미세먼지가 빠져나갈 곳을 찾지 못한 채 한반도에 갇혀 있다. 조석연 인하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서해상에선 바람이 초속 5∼6m로 불어 중국의 미세먼지가 빠르게 넘어오는데, 내륙에선 바람이 잠잠해져 농도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동해상에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기류가 벽을 형성해 한반도에 미세먼지를 가두는 장벽 역할을 하고 있다.

올봄에는 황사까지 잦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황사 발원지인 중국 내륙 사막과 몽골 고원 지역의 강수량이 평년보다 적어 땅이 메말라 있다. 약한 바람에도 흙먼지가 날리기 쉬운 조건인 것이다. 황사가 덮치면 초미세먼지(PM2.5)보다 미세먼지(PM10) 농도가 급속히 올라간다. 기상청에 따르면 당분간 미세먼지를 씻어낼 정도의 큰비나 찬 바람을 기대하기 어렵다. 6일에도 초미세먼지 농도는 부산과 울산, 경남, 제주는 ‘나쁨’, 서울 등 그 외의 지역은 ‘매우 나쁨’을 기록할 것으로 예보됐다.

강은지 kej09@donga.com / 제주=임재영 / 염희진 기자
#제주#미세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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