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보다 개인 신념 중시… “양심의 진정성은 검사가 판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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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양심적 병역거부 무죄]다수의견 8명 “양심이 병역에 우선”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법 합의부에 환송한다.”

1일 오전 11시 33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김명수 대법원장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승헌 씨(34)의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다는 주문(主文)을 읽자 오 씨가 환하게 웃었다. 대법정을 나온 오 씨는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 대체복무 도입 등이 남았는데, 이것이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오·남용될 수 있다는 국민의 우려가 있는 것을 안다. 우려를 없앨 수 있도록 성실히 (대체)복무를 하겠다”고 말했다.

○ “양심의 자유가 병역의 의무에 우선”

김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안철상 법원행정처장 제외) 등 13명으로 구성된 전원합의체는 ‘9 대 4’의 다수 의견으로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앞서 2004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는 “처벌할 수 없다”는 소수 의견이 13명 중 1명뿐이었다. 14년이 지나 소수 의견이 다수로 역전된 것이다.

처벌할 수 없다는 다수 의견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김 대법원장과 권순일 김재형 조재연 박정화 민유숙 김선수 노정희 대법관 등 8명은 “양심의 자유가 병역의 의무에 우선할 수 있다”고 봤다.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제19조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기본조건이자 민주주의 존립의 불가결 전제로서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므로 양심의 자유가 병역의 의무에 우선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또 양심의 자유는 외부로 표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자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실현 과정에서 타인의 권리나 법질서와 충돌할 수 있지만 헌법적으로 침해할 수 없는 권리라는 것이다.

이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자유를 내심(內心)에 한정한 2004년 7월 전원합의체 판결과 배치된다. 2004년 대법원이 ‘공동체와의 조화’를 우선했다면 2018년 대법원은 ‘개인의 내적 가치’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반면 이동원 대법관은 “병역의 의무가 양심의 자유에 우선한다”면서도 대체복무제 도입을 예상하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대법관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하는 병역거부자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지우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 제한”이라고 밝혔다.

○ “‘진정한 양심’은 검사가 판단”

대법원은 다수 의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의 조건을 ‘진정한 양심에 따른 거부’로 규정하고 진정한 양심은 전체 삶에 영향을 끼치고 좀처럼 바뀌지 않는 신념이라고 했다.

또 ‘진정한 양심’을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피고인이 소명자료를 제시하면 검사는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진정한 양심의 부(不)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게 다수 의견의 판단이다. 검사가 병역거부자의 가정환경, 성장과정, 학교생활, 사회경험 등 삶의 모습을 전반적으로 살핀 뒤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소수 의견으로 ‘양심적 병역거부 유죄’ 판단을 한 김소영 조희대 박상옥 이기택 대법관은 “진정한 양심의 존재를 심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다수 의견이 제시한 사정들은 형사소송법이 추구하는 실체적 진실 발견에 부합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2002년 일선 지방법원 판사로서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낸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받아들여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수면 위로 끄집어냈던 박시환 전 대법관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너무 오래 걸렸다. 합리적, 인권적 측면에서 빨리 결정을 내렸어야 했는데 늦게나마 그런 길을 찾게 돼 다행”이라고 했다.

이호재 hoho@donga.com·허동준 기자
#양심적 병역거부#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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