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저승사자와 달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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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9시간 일하며 639km 운행… 5시간 반 자고 또 핸들
졸음운전 참사로 본 광역버스 운전사 과로근무

9일 경부고속도로에서 7중 추돌사고를 일으킨 광역급행버스의 블랙박스 영상이 10일 공개됐다. “과로로 깜빡 정신을 잃었다”고 
진술한 버스 운전사가 사고 직전 거의 움직임 없이 운전대를 잡고 있다(위 사진). 버스가 K5 승용차를 들이받는 순간 유리창이 
깨지고 운전사의 몸이 앞으로 휘청거리고 있다(아래 사진). 서울서초경찰서 제공
9일 경부고속도로에서 7중 추돌사고를 일으킨 광역급행버스의 블랙박스 영상이 10일 공개됐다. “과로로 깜빡 정신을 잃었다”고 진술한 버스 운전사가 사고 직전 거의 움직임 없이 운전대를 잡고 있다(위 사진). 버스가 K5 승용차를 들이받는 순간 유리창이 깨지고 운전사의 몸이 앞으로 휘청거리고 있다(아래 사진). 서울서초경찰서 제공

“시속 90km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눈이 감긴 것 같은데 갑자기 우당탕 소리가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앞바퀴가 붕 떠 있었다.”

9일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에서 7중 추돌사고를 낸 광역급행버스(M버스) 운전사 김모 씨(51)는 사고 당시 상황을 이같이 설명했다. 이틀 일하고 하루를 쉬는 김 씨는 이날 이틀째 근무하던 날이었다. 사고 전날인 8일 김 씨는 오전 5시∼오후 11시 반까지 19시간 가까이 일했다. 경기 오산시∼서울 사당역까지 2시간 반 정도 걸려 106.6km 구간을 왕복하는데 이 여정을 6차례 반복했다. 운행 거리가 639.6km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약 360km(최단거리 기준)의 두 배에 육박한다.

이튿날 김 씨가 출근해 운전대를 잡은 시각은 오전 7시 15분. 전날 운전대를 놓은 지 7시간 반 만이었다. 그는 점심식사 후 오후 1시 45분 세 번째 운행에 나섰다. 그리고 약 1시간 만인 오후 2시 42분 사고가 났다. 김 씨의 동료들은 “김 씨는 경력 8년의 베테랑 기사였다”며 그날따라 김 씨는 버스에 잘 오르지 못하고 식당에 자주 앉아 있었다”고 전했다. 김 씨는 별다른 사고 전력이 없다.

현행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은 사업용 차량 운전사들이 2시간 이상 운행 때 반드시 15분 이상 쉬도록 하고 있다. 또 운행 간격도 최소 8시간 이상을 유지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김 씨에게 이 규정은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올 3월 김 씨의 동료들은 오산시청에 “전날 운행 후 다음 날 운행 때까지 8시간 휴식을 보장해 달라”는 진정을 제기했다. 하지만 실제 근무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런 환경은 김 씨만의 얘기가 아니다. 이날 본보 기자는 27년 경력의 이모 씨(60)가 운전하는 광역버스(경기 수원시∼서울역)에 탑승해 17시간 동안 운행 상황을 확인했다.

“씹을 거리가 있어야 저승사자가 못 온다.”

이 씨는 운전대 옆 비닐봉지에 담긴 콩과 호두를 한 움큼 집어 입에 털어 넣었다. 식사 후 몰려오는 졸음이 그에겐 ‘저승사자’다. 오후 11시가 돼서야 일과를 마친 그는 “한 번 나가면 2, 3시간 꼼짝 못 하고 달려야 하는 게 버스 운전이다. 잠깐 눈을 감았는데 앞차가 코앞인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이날 오전 4시 반 수원에 있는 차고지에 도착해 오전 5시 10분 운행을 시작했다. 두 차례 왕복운행을 하고 수원 차고지로 돌아온 때가 오전 10시 반. 이때가 하루 첫 끼니를 해결하는 시간이다. 10분 만에 밥그릇을 비운 그는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아들고 담배를 물었다. 15분간 한숨을 돌린 이 씨는 다시 버스에 올랐다.

오산=최지선 aurinko@donga.com / 수원=신규진 기자
#졸음운전#광역버스 운전사#과로근무#교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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