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용 공짜여행’ 된 대학 해외탐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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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혜선발 논란에 일부 대학 몸살

“이딴(이런) 졸속행정과 비리로 등록금 내고 다니는 학생들을 유린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지난달 18일 서울 A대학의 페이스북 ‘대나무숲’(익명 게시판)에는 해외탐방 프로그램의 선발 과정에 비리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글이 올라왔다. 선발 권한이 있는 교직원과 친한 학생들이 뽑히는 ‘특혜’가 있었다는 주장이었다.

이 글이 게시된 뒤 “같이 면접 볼 때 질문 요지도 파악하지 못해 면접관이 몇 번이고 다시 알려줘 겨우 대답한 팀이 합격했다. 합격자 프로젝트를 그대로 공개하라” “합격한 20개 팀 중 9개 팀은 특정 교직원이 관여하는 활동에 동참한 학생들이다” 등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듯한 글도 속속 올라왔다. 대자보가 나붙고 불합격자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문제 제기를 계속하는 등 사태가 커지자 대학 당국은 “허위사실이 계속 유포될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학생에게 여행 기회와 ‘취업 스펙’을 제공하는 해외탐방 프로그램이 일부 대학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 취업난에 경쟁률 더 치솟아

해외탐방 프로그램은 대학이 방학마다 학생을 선발해 유럽, 미국, 중국 등 해외로 2주 안팎의 견학을 보내주는 장학제도다. 2000년대 들어 기업이 학생 공모 형식으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2010년경부터 전국 주요 대학들이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매년 학교 돈 수억 원을 들여 운용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취업난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취업 스펙으로 활용하기 좋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A대학의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떨어진 학생은 “비록 한두 주짜리 견학이지만 ‘유럽 해외탐방 프로그램을 이수했다’고 이력서에 쓰면 교환학생이나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경쟁률은 보통 5 대 1 정도다. 3년 전 서울 B대학의 해외탐방 프로그램 경쟁률은 14.5 대 1까지 치솟았다. 학기 말만 되면 여러 대학 인터넷 게시판엔 ‘취업 스터디’를 구성한다는 글에 이어 “함께 해외탐방을 준비할 사람을 구한다”는 글이 넘쳐난다.

○ 허술한 선발·운영 과정

그러나 선발 과정의 투명성이 낮고 프로그램의 관리, 감독 역시 허술해 전국 여러 대학에서 비슷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서울 C대학에서도 “선발 기준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충남의 D대학에선 대상자를 비공개로 모집해 “일부 학생에게만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해외탐방 프로그램 공모가 시작되면 학생들 스스로 일정과 지원서를 작성해 제출한다. 대학 측은 1차 서류심사, 2차 면접 등을 거쳐 100명 안팎을 선발한다. 대부분 대학은 합격자 명단만 공개할 뿐 심사 성적이나 낙방 사유는 공개하지 않는다.

외유성 해외여행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E대학 4학년 이모 씨(25)는 “이슬람국가(IS) 테러를 조사하러 프랑스 파리에 가겠다고 지원서를 냈지만 루브르박물관과 에펠탑을 보고 올 예정”이라며 “다녀와서 A4용지 1장짜리 견학보고서만 제출하면 된다”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등록금으로 일부 학생에게 수혜를 주게 되는 프로그램일수록 선발 기준과 운영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호재 hoho@donga.com·김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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