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학 교양교육 패러다임 확 바꿔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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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한국교양기초교육원 공동기획 ‘대학 교양교육 혁신의 길’
<上> 한국 교양교육의 실태 및 개선방안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요구되는 융복합,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기르려면 대학의 교양교육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성화된 교양교육 모델로 평가받는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시민교육’ 수업 장면. 동아일보 자료사진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요구되는 융복합,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기르려면 대학의 교양교육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성화된 교양교육 모델로 평가받는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시민교육’ 수업 장면. 동아일보 자료사진
 2010년 1월 아이패드가 세상에 첫선을 보인 날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정체성을 설명할 때 배경에 특이한 교통 안내판이 보였다. 서로 엇갈린 두 개의 표지판에는 인문학(Liberal Arts)과 기술(Technology)이라고 쓰여 있었다. 잡스는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애플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 지점에 존재해왔다. 우리가 아이패드를 만든 것은 애플이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갈림길에서 고민해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람들은 기술을 따라잡으려고 애썼지만 사실은 반대로 기술이 사람을 찾아와야 한다.”

 이 말은 기술이 모든 세상을 지배할 것 같은 현실에서 그동안 등한시하거나 퇴조하는 학문쯤으로 대접받고 있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웅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문학이 고사(枯死) 위기에 처했다는 아우성이 나오고 있지만 인공지능(AI)의 등장을 계기로 제4차 산업혁명이 닥쳐오는 시대에는 융합의 학문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대학 교양교육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육부는 2010년 학부교육선도대학육성사업(ACE)을 시작하면서 인문소양 함양을 위한 교양교육과정 개편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85%의 대학에 학부대학, 기초교양교육원, 교양대학 등의 이름으로 교양교육 기관이 설립됐다.

 경희대는 2011년 대학생 교양교육을 전담하기 위한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데 대학들의 교양교육과정이 천편일률적인 데 비해 성공적인 모델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졸업학점 120학점 중 35학점은 중핵교과, 배분이수교과, 기초교과, 자유이수교과에서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교양 과정을 들어야 한다. 개설 과목만 1000개가 넘는다. ‘글쓰기’와 ‘시민교육’은 이 대학이 강조하는 과목인데 ‘나를 찾는 글쓰기’와 박경리의 소설 ‘토지’ 같은 소설을 한 학기 동안 읽는 인문고전교육도 인기가 높다.

 이영준 교양교육연구소장은 “학생들이 자신의 존재와 살아온 과정에 대해 성찰하며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 같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발표하는 날이면 수업시간이 눈물바다가 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이제는 교수가 일방적으로 가르칠 게 아니라 학생이 관심 분야를 찾아 개척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며 “공학과 음악이 결합되는 등 다양한 융합의 시대에 맞게 교육과정도 변신하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말했다.

 또 ‘독립연구’는 학생들이 자신의 관심 분야를 찾아서 과정을 짜고 원하는 교수에게 지도를 부탁하는 방식이다. 학생 2∼10명이 팀을 이루고, 교수 1명이 4개 팀까지 지도할 수 있다. ‘에머슨의 초절주의 연구’ ‘한국비교철학사 연구’ ‘시민교육 현장활동의 지속’ 같은 강좌도 있다.신민지 씨(언론정보학과 3학년)는 “다른 수업에서는 시간과 인원 제한 등으로 한계가 있어 관심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며 “교수님의 멘토링을 받으면서 활동 영역도 훨씬 다양해져 만족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신입생들은 2011년부터 송도의 레지던스 칼리지(RC)에서 전원 1년간 교양수업을 받는다. 9개 영역 중 8개 영역에서 1과목 이상씩 기초학문 과목을 골고루 이수해야 한다. 문과는 문과, 이과는 이과 관련 과목만 수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 수강을 통해 학문의 폭을 넓혀주자는 취지다. ‘인문사회 학생을 위한 수학’이나 ‘생명과학이란 무엇인가’ 과목을 교차해서 듣는다. 강의실 밖의 체험교육도 중시해 ‘사회봉사’ ‘문화예술’ ‘체육’은 필수교양이고 명사초청 특강이나 교내 콘서트 등 학생들의 교양 함양을 위한 과정도 운영하고 있다. 기숙사 생활로 학생끼리 소통할 기회가 많고, 학사 지도교수와 학생 지도교수 20명이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교양교육 개선에 있어 전공중심의 ‘학과 이기주의’가 큰 걸림돌이라고 강조한다. 교육과정을 전공 위주로 짜려는 경향 때문에 유연성이 떨어지고 교양교육 담당 단과대나 조직은 힘이 약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학과에 밀리기 일쑤다.

 손동현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획일적인 전공학과 구분의 경계를 낮춰 넘나들 수 있게 교육과정 중심으로 변화시켜야 기초학문이 발전할 수 있다”며 “학생을 전공학과에 전속시키지 않고 기초학문 분야에서 여러 학문을 다양하게 교육받게 하는 미국식 학부대학(University College)이나 자유학예대학(Liberal Arts College)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2011년 산하에 ‘한국교양기초교육원’을 두고 대학의 교양교육을 전문적으로 연구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지원 예산이 줄어 정부의 교양교육 정책 의지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우섭 원장은 “올해 예산이 11억5000만 원이었는데 2017년에는 그나마 6억 원으로 깎였다”며 “교양교육은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것이 아닌 만큼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윤종 전문기자 gustav@donga.com
#4차 산업혁명#교양교육#대학 교양교육 혁신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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