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만에 살인누명 벗은 날… 진범추정 30대 붙잡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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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재심서 무죄

 열여섯 살에 살인범이 됐던 한 소년이 16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사건은 2000년 8월 1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오전 2시 전북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 부근에서 택시운전사 유모 씨(당시 42세)가 운전석에서 흉기에 찔린 채 발견됐다. 유 씨는 사건 발생 직후 무전기로 동료에게 ‘약촌오거리에서 강도를 당했다’고 말했다. 유 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곧바로 숨을 거뒀다.

 익산경찰서는 사건 발생 사흘 뒤 목격자이자 인근 다방에서 오토바이를 타며 배달 일을 하던 최모 씨(당시 16세)를 범인으로 검거했다. 경찰은 최 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택시 앞을 지나가다 유 씨와 시비가 붙었고 “너는 어미, 아비도 없느냐”는 유 씨의 말을 듣자 격분해 범행을 저질렀다며 구속했다. 최 씨는 2001년 2월 전주지법 군산지원에서 열린 1심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어 같은 해 5월 광주고법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다.

 반전의 시작은 2003년 3월이었다. 전북 군산경찰서는 택시 강도 미제사건을 수사하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그리고 용의자로 지목된 김모 씨(35)를 붙잡아 수사했다. 김 씨는 자신이 진범이라며 자백까지 했다. 하지만 검찰은 증거 불충분과 진술 번복 등을 이유로 기소하지 않았다.

 2013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최 씨는 ‘강압수사에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썼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2년 뒤인 지난해 6월 광주고법은 재심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재심이 진행되던 올해 9월 당시 수사 담당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렸던 박모 경위(44)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마침내 17일 광주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노경필)는 최 씨의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경찰 조사 당시 최 씨의 자백이 강압수사 등으로 인한 허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숨진 택시운전사 유 씨가 무전기로 ‘약촌오거리, 강도’라는 말을 남겼는데 최 씨와 시비가 붙어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 정황상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 당시 사건 현장에서 20m가량 떨어진 곳에 이삿짐 트럭을 세워놓고 있던 목격자 A 씨가 최 씨를 보지 못했다고 진술한 영향도 컸다. A 씨는 ‘악’ 비명소리와 함께 유 씨가 택시에서 몸을 반 정도 뺐다가 다시 운전석으로 들어간 모습만 봤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차량 밖에서 싸움을 했다던 최 씨가 차량으로 유 씨를 끌어들어 흉기로 찔렀다는 것이 신뢰하기 힘들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최 씨가 경찰에서 범행 수법은 물론이고 흉기의 출처, 은닉 장소 등에 대해 계속 바꿔 진술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재판부는 당시 최 씨가 입었던 옷과 슬리퍼, 사용했다는 흉기에서 혈흔 반응이 나오지 않았고, 통화기록을 분석해 볼 때 그가 3분 22초 만에 모든 범행을 끝내기는 힘들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경찰과 검찰 수사 과정에서 최 씨의 자백 동기와 경위를 수긍하기 어렵고 각종 증거와도 모순된다”며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또 “최 씨와 경찰관들이 아픔을 털어내고 더 불행한 삶이 없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선고 직후 최 씨는 “무슨 일을 하려 할 때마다 붙은 살인 꼬리표에 가장 힘들었다”며 “경찰관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를 듣고 싶다”고 했다.

 한편 전주지검 군산지청은 이날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2003년에 증거불충분으로 풀어줬던 김 씨를 다시 체포했다. 검찰은 유 씨의 사체부검 결과와 A 씨의 증언 등을 토대로 김 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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