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최예나]과도한 이과 선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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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나 정책사회부 기자
최예나 정책사회부 기자
서울대 철학과 1학년 A 씨는 신입생 생활 한 달 만에 재수학원에 들어갔다. 의대에 가기 위해서다. 만약 경영학과 정도 갔더라면 재수를 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A 씨는 생각한다. 문과, 그중에서도 인문계열 학과는 취업이 잘 안 된다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A 씨는 “철학과에 들어갈 때도 ‘고시나 보겠지’라고 생각했다”며 “취업에 유리하다는 점 등이 이과 전환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A 씨를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문과에서 이과로 전환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수학과 과학을 처음부터 공부하는 부담이 매우 크고, 성적도 쉽게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상위권 재수생이 몰려 있는 강남대성학원은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수학 영어 등급의 합이 5인 문과 학생이 이과로 전환한다고 하면 6등급으로 평가 절하할 정도다.

그런데 최근 이런 어려움을 정면 돌파하려는 최상위권 재수생이 예전보다 늘었다고 한다. 종로학원 본원 관계자는 “문과에서 이과로 바꿔 재수하는 학생은 지난해 3, 4명 정도였지만 올해는 6, 7명으로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현실 때문이라고 한다.

외국어고 출신 B 씨도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가고 싶어 재수 중이다. 그는 이공계로 전환한 이유로 “요새 이공계가 각광 받고 있고 산업 수요도 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올해 이과로 전환한 삼수생 C 씨는 “재수 학원에 ‘문과는 할 게 없어 고시를 봐야 하고 이과는 취직이 잘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라고 토로했다.

인문사회계열 대학생 중에는 이공계열 학과를 복수전공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의 주요 대학 일어일문학과 D 씨는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한다. 그는 “요새 문과는 취직이 안 되는데 학점도 특출 나지 않아 일문과로 졸업하면 어쩌나 두려웠다”고 했다. 컴퓨터공학과에는 자신과 같은 학생이 4명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자녀를 이과에 보내고 싶다며 사설 컨설팅업체의 문을 두드리는 학부모가 유독 많다. 서울 강남의 한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우리 아이는 누가 봐도 100% 문과 성향인데 이과에 보내려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라고 묻는 학부모가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초등학생 학부모들은 자녀를 방학 때 각종 창의력 캠프, 과학 캠프에 보내려고 아우성이다.

요즘의 이과 추종 현상은 문과 학생들의 취업난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 구조적인 배경이 크다. 정부는 프라임 사업(산업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 대학 사업)으로 대학의 이공계 정원을 늘렸고, 주요 대기업은 이공 계열 채용을 늘리고 구조조정을 이유로 사무직을 자른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는 이과 출신이 낭패였다. 경영난을 겪는 기업이 생산 현장과 연구개발 인력을 감축해서였다. 한때 잘나가던 조선 관련 학과도 조선업 불황으로 지금 위기 아닌가.

중요한 건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하는 거다. ‘여름철 난로와 겨울철 부채(하로동선)’라는 말처럼 적성이나 능력과 무관하게 맹목적으로 이과만 추종했다가는 오히려 본인의 경쟁력만 하락시킬 위험성이 크다.

최예나 정책사회부 기자 yena@donga.com
#재수생#이공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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