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전 헤어진 그녀에게서 연락이 온 건 지난해 11월이었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인 이모 씨(24)는 헤어진 뒤에도 이전 여자친구 조모 씨(23)에게 가끔 연락을 하곤 했다. 둘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7년 동안 만난 사이였다. 이 씨는 형편이 어려운 자기사정을 잘 이해해준 그녀를 누구보다 의지했다. 이번에도 그녀의 ‘배려’에 고마워하며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런데 그녀는 이 씨를 태국에서 청부살해한 악마였다.
이 씨를 죽음으로 내몬 건 조 씨와 동거남 박모 씨(36)였다. 태국 여성을 고용해 퇴폐 마사지 업소 10곳을 운영하던 박 씨는 지난해 경찰과 구청의 단속으로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자 조 씨와 공모해 사망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이 씨에게 접근했다. 이들은 이 씨에게 마사지 업소 영업이사 자리를 약속하며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이유로 태국 행을 권유했다.
“오빠, 여기에 내 이름 쓰면 돼.” 조 씨는 여권 발급부터 여행자 보험 가입까지 이 씨의 출국 업무를 도왔다. 이 씨는 여권을 신청하면서 비상연락망에 조 씨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었다. 보험 계약서 사망 보험금(3억 원) 수령자도 조 씨로 지정했다.
지난해 12월 12일 박 씨의 사주를 받은 태국 마사지 여성 모집책 김모 씨(24)와 박모 씨(35)는 태국 방콕에 도착한 이 씨를 렌트카에 태우고 방콕에서 북동쪽으로 340km 떨어진 외곽으로 이동했다. 인적이 드문 공터에 도착하자 김 씨 등은 미리 준비한 운동화 끝으로 이 씨를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배수로에 버렸다. 강도 살인을 당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숨진 이 씨의 복부를 칼로 두 번 찌르고 소지품을 흐트러뜨리는 치밀함도 잊지 않았다. 한국에 있던 업주 박 씨는 이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으며 스마트폰으로 이들에게 구체적인 행동을 일일이 지시했다. 이 씨를 살해한 직후 김 씨와 박 씨가 한국으로 돌아오자 박 씨와 조 씨는 이들을 강원도의 한 펜션에서 만나 경찰의 수사를 대비해 “무조건 잡아떼면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날 수 있다”고 입을 맞추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범행은 의외의 곳에서 덜미를 잡혔다. 주태국한국대사관 경찰 주재관이 숨진 이 씨 여권에 적힌 조 씨 번호로 전화해 사망 사실을 알렸지만 조 씨의 반응이 석연치 않았다. 수사에 나선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현지에 수사관 3명을 파견하고 태국 경찰과 공조 수사를 벌이는 한편 한국에서는 사망 보험금 수령자인 조 씨와 동거남 박 씨의 행적을 집중적으로 추적한 끝에 16일 박 씨 등 일당을 모두 검거했다.
검거 당시 조 씨는 눈물을 흘리며 결백을 주장하고 경찰에게 “무고한 시민을 왜 잡아가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검거 직후에도 모든 범행을 부인하던 조 씨는 16일 밤 이 씨를 살해한 김 씨와 박 씨가 모든 범행을 털어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야 자백할 뜻을 내비쳤다. 경찰은 17일 박 씨 등 4명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럼에도 업주 박 씨는 지금까지도 모든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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