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장애인들에게 무용지물 된 ‘은행 ATM 코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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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은행 신대방지점 앞 도로에서 휠체어를 탄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최영동 씨가 높은 건물을 쳐다보고 있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경남은행 신대방지점 앞 도로에서 휠체어를 탄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최영동 씨가 높은 건물을 쳐다보고 있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아유, 도대체 어디로 들어가라는 거지.”

7일 오후 3시 50분경 경남 창원시 성산구 경남은행 신대방지점 앞.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코너 앞 도로에서 휠체어를 탄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최영동 씨(44)는 난감한 표정이었다. 도로보다 높은 이 지점의 ATM 코너는 4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두리번거리던 최 씨는 건물 왼쪽을 돌아 은행 후문으로 갔다. 노크를 하자 직원이 철문을 열었다. 용건을 설명한 뒤 은행 점포를 통과해 ATM 코너에 도착한 최 씨. 그는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너무 미흡하다”고 말했다. 이 코너의 ATM 4대 중 한 대는 장애인용이었다. 휠체어 발판이 들어가도록 설계했으나 충분하진 않았다. 안내책자도 높은 곳에 비치해 두었다.

기기 화면은 햇빛에 반사돼 휠체어에 앉은 상태로 글자를 읽기 어려웠다. 잠시 후 은행 관계자는 최 씨에게 “후문을 닫아야 한다”며 나가 달라고 했다. 오후 4시가 됐기 때문.

최 씨와 동행한 경남장애인권리옹호네트워크 행정지원팀의 송은숙 씨가 후문 폭을 재어 보니 72cm였다. 수동 휠체어는 겨우 지나갈 수 있으나 전동 휠체어는 통과가 어려웠다. 후문에서 차도까지 이르는 램프도 경사가 급하고 폭도 113cm로 여유가 없었다.

이곳에서 200m 정도 떨어진 남창원농협 대남지점도 장애인이 이용하는 데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5계단 위에 있는 ATM 코너로 직진하는 램프는 없었다. 최 씨는 휠체어를 타고 마트 쪽 램프로 향했다. 송 씨가 밀어도 힘겨울 정도의 급경사였다. 오후 4시를 지난 시각이어서 출입문은 닫혀 있었다. 점포 안의 ATM 화면은 115cm 정도로 높아 휠체어에 앉아 이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농협 관계자는 “오래된 건물이어서 불편하다. 신축할 때는 장애인이 이용하는 데 편리하도록 설계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휠체어를 타고 함께했던 주부 이혜진 씨(39)는 “경남지역 대부분의 금융기관 ATM은 장애인이 이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더욱이 오후 4시 이후에는 ‘접근 불가’였다.

경남장애인권리옹호네트워크(대표 송정문)의 모니터링 결과에서도 잘 나타난다. 경남 창원과 진주 통영 사천 거제 밀양 김해 양산 등 8개 시의 NH농협은행과 KB국민은행, BNK경남은행, 우리은행 등 4개 금융기관 ATM 368대가 조사 대상이었다. 경사로와 점형 블록 설치 여부, 접근로 폭, 엘리베이터 유무 등 장애인 시설을 기준에 맞게 설치한 이행률 조사에서 양산 지역이 69%로 가장 높았다. 사천은 66%, 통영은 64%였다. 휠체어 회전성과 ATM의 높이 등 활용성에서는 밀양지역 이행률이 59%, 통영은 53%, 거제와 사천은 각 47%였다. 금융기관별로는 우리은행이 접근성(85%)과 활용성(50%) 모두 높은 편이었다. 경남은행은 접근성(56%)과 활용성(39%)이 크게 낮았다. 국민은행과 농협은행은 각각 62%, 47%로 비슷했다. 여기동 경남장애인권리옹호네트워크 상담팀장은 “자립 생활을 하는 장애인을 위해 금융 및 행정기관은 ATM 접근성과 활용성을 8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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