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태훈]국민은 고위층 비리 척결을 갈망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3일 03시 00분


이태훈 사회부 차장
이태훈 사회부 차장
법조계에는 ‘1도, 2부, 3백’이란 말이 있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 “일단 도망가고, 소환되면 무조건 부인하며, 그래도 안 되면 백(배경)을 동원한다”는 뜻을 압축한 것이다. 감방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조폭이나 상습범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지만 검사가 증거를 찾아 범법자를 법정에 세우는 일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잡범들이 이럴진대 실력 있는 전관 변호사에게 법적 도움을 받는 거물급 인사나 실제로 백을 동원해 수사에 제동을 걸 수도 있는 권력자들을 단죄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힘깨나 쓴다는 고위직 부패는 보통의 검사가 아닌 ‘특별한 검사’가 전담한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지방검찰청마다 특별수사부가 설치돼 고위층의 금품 수수 비리와 기업주의 횡령, 배임 등 대형 범죄를 단속한다. 일선 검찰의 핵심인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는 특수부 4개가 있다. 원래 특수3부까지 있었으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2013년 폐지된 이후 수사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한 개 부서를 늘렸다.

2013년 4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검 중수부는 폐지되기 전 최고 사정기관으로서의 위상이 확고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이 조사를 받고 감옥으로 직행했다. 경우에 따라 ‘살아 있는 권력보다 죽은 권력에 강하다’거나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한다’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권력형 비리와 대형 경제범죄, 국회의원 및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 비리를 엄단한 ‘수사 능력’만큼은 독보적이었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일부의 우려 속에서도 중수부에 버금가는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을 취임 초 서둘러 발족한 것은 중수부가 보유했던 ‘수사력’이 절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중수부는 평소 검사 10여 명이 2, 3개 과에 편성돼 조용히 내사를 벌이지만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면 전국 검찰청에서 수사 경험이 풍부한 검사와 수사관 등을 대거 차출해 100명 정도의 매머드급 ‘드림팀’으로 몸집을 불려 신속하게 비리를 규명했다. 중수부장-총장으로 보고 체계도 간단해 의사결정이 빨랐다. 총장이 외풍을 잘 막으면 수사가 옆길로 빠질 우려도 적었다.

2003, 2004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대검 중수부의 위상과 역할을 국민에게 각인시킨 대표적인 수사였다. 당시 삼성 현대차 LG SK 한진 한화 두산 롯데 금호 동부 등 재벌기업들이 안대희 중수부장이 지휘하는 중수부 조사를 줄줄이 받았다. 한나라당이 불법 대선자금을 받을 때 냉동 탑차에 현금을 실어 받은 사실이 드러나 그 유명한 ‘차떼기’란 말이 이때 생겨나기도 했다.

특별수사단이 닻을 올리면 이제 관심은 첫 수사가 언제, 누구를 대상으로 시작될지에 모아질 것이다. 중수부 부활 논란 속에 출범하는 만큼 수사의 명분과 공정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기대에 부합하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점은 김수남 총장과 김기동 특별수사단장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인권침해 시비를 차단하는 것은 기본이다.

특별수사단에 던지는 ‘국민의 뜻’은 명확하다. 국민은 옛 중수부의 일부 잘못된 수사 관행을 바로잡으라고 한 것이지, 느슨한 수사력으로 거악(巨惡) 척결을 대충 하라고 명령한 적이 없다. 오히려 고위층 비리는 이전보다 더욱 강도 높게 파헤치기를 국민은 갈망한다. 특별수사단은 우리 사회에서 힘 있고 돈 많은 고위층이 저지른 범죄를 단죄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다. 역사적 사명의식을 갖고 소신껏 수사해서 국민에게서 박수갈채 받기를 기대해본다. 그래야 한국이 재도약할 수 있다.

이태훈 사회부 차장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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