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9일 산천어축제가 열릴 예정인 강원 화천군 화천천이 따뜻한 날씨 탓에 제대로 얼지 않으면서 출입을 금지하는 안내판이 걸려 있다.
화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지금이 과연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포근한 날씨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역 인근. 점심시간 산책을 나온 사람들은 발걸음만큼이나 옷차림도 가벼웠다. 이따금 두꺼운 패딩이나 오리털 점퍼를 입은 사람도 보였지만 하나같이 지퍼를 열어 놓은 차림이었다. 이날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5.3도. 23일에는 10.6도까지 올랐다. 얇은 후드티에 슬리퍼를 신은 박진호 씨(34)는 “외투를 입으려고 보니 생각보다 춥지 않아 그냥 집에서 입던 옷차림으로 나왔다”며 “겨울인지 가을인지 분간하기 힘든 날씨”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공덕역 지하의 한 잡화점 앞에는 발토시 니트모자 발열타이츠 등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러나 물건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장 이모 씨(43·여)는 “겨울 의류와 방한용품 매출이 지난해의 절반 밑으로 뚝 떨어졌다”고 했다.
유난히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예년과 완연히 다른 겨울 일상이 펼쳐지고 있다. 아침에 출근할 때 코트를 입어야 할지 고민하는 직장인도 많다. 히말라야 등반대원을 연상케 하는 두툼한 기능성 점퍼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목이 실종된 겨울 쇼핑가는 침울하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23일까지 아웃도어 상품군의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1% 하락했다. 온라인 쇼핑몰 ‘현대H몰’의 난방용품 매출은 지난해보다 4.9% 떨어졌다.
▼ 얼음 안 얼어… ‘얼어붙은’ 강원 겨울축제들 ▼
눈과 얼음으로 상징되는 겨울축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보통 얼음낚시를 위해서는 하천의 얼음 두께가 20cm 이상 돼야 한다. 그러나 최근 강원도나 경기북부 주요 하천의 얼음 두께는 5cm에도 못 미친다. 급기야 강원 홍천군축제위원회는 24일 긴급회의를 열고 내년 1월 1∼17일 열 예정이던 ‘제4회 꽁꽁축제’를 전격 취소했다. 전명준 홍천군축제위원장은 “고온 현상 지속으로 내년 1월 중순까지도 홍천강의 얼음이 제대로 얼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축제 내실을 기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어쩔 수 없이 취소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평창 알펜시아리조트는 대형 얼음조각 수십 개를 전시하는 ‘하얼빈 빙설대세계’를 23일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개막을 30일로 일주일 연기했다. 충남 청양 알프스마을에서 열리는 칠갑산얼음분수축제도 24일부터 내년 2월 14일까지로 예정되었지만 평균 12m 높이의 얼음분수가 녹아내려 개막을 일단 28일로 미룬 상태다. 또 24일 개막 예정이던 경남 거창 금원산얼음축제는 30일로, 25일 개막하기로 했던 경기 가평 청평얼음꽃축제는 내년 1월 1일로 미뤄졌다.
이미 시작한 축제는 반쪽 행사로 진행되고 있다. 18일 개막한 강원 평창송어축제는 주 행사인 얼음낚시를 제외한 채 눈썰매 등 일부 놀이시설만 운영 중이다. 평창송어축제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매년 이맘때면 오대천이 20cm 이상 꽁꽁 얼어 전국에서 가장 먼저 겨울축제를 열었는데 올해는 얼음이 거의 얼지 않았다”며 “축제 준비자들의 마음만 꽁꽁 얼었다”며 양해를 구했다. 24일 개막한 경기 양평 ‘물맑은 양평 빙어축제’와 25일 시작되는 강원 영월 동강겨울축제도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얼음낚시를 금지하기로 했다.
이 밖에 1월 중 개막 예정인 강원 정선 고드름축제, 평창 대관령눈꽃축제, 화천 산천어축제, 인제 빙어축제, 태백산 눈축제도 날씨 상황을 지켜보며 개최 여부, 일정 변경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같은 겨울 축제이지만 눈이나 얼음과 상관없는 거리 행사는 오히려 날씨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인천 중구 개항장지구에서 진행 중인 ‘신포어울림 빛축제’에는 예상을 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이병직 중구 문화예술팀장은 “포근한 날씨 덕분에 거리 음악회가 열릴 때마다 700∼800명의 관람객이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 덕분에 신포시장의 유명 먹거리인 닭강정과 공갈빵 등은 연일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지난달 28일 시작된 제7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 축제도 방문객 증가가 뚜렷하다. 부산 중구 광복로 1.2km 일대에서 진행 중인 축제에서는 다양한 크리스마스트리와 각양각색의 조명을 이용한 조형물이 인기다. 지난해 이곳을 찾은 관람객은 약 700만 명. 축제조직위는 날씨 덕분에 올해 100만 명이 추가로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직위 관계자는 “밤에도 크게 춥지 않아서인지 아이들 손을 잡고 오는 가족 단위 관람객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겨울답지 않은 날씨는 올 11, 12월 엘니뇨 영향으로 한반도 남쪽에서 따뜻하고 습기 찬 공기가 자주 유입됐기 때문이다. 올해 남한지역 평균 기온은 평년보다 0.9도 높은 13.8도. 1973년 이래 두 번째로 높은 온도다. 이번 주말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영하권으로 떨어지면서 반짝 추위가 오겠지만 다음 주 중반 이후 다시 영상 5도 안팎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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