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흔적은 아직도 몸 곳곳에서 발견된다. 김용자 씨(52·여)의 왼쪽 팔꿈치에는 파열된 인대를 치료하기 위한 붕대가 둘둘 감겨 있다. 김 씨의 상처는 9월 6일 제주 추자도 근처에서 생겼다. ‘97흥성호’를 모는 남편 박복연 선장(54)과 조업을 나갔다 ‘돌고래호’ 조난자 3명의 목숨을 구한 날이었다.
박 선장은 구조 당시를 “바다 생활 30년 중 가장 날씨가 안 좋았던 날”로 기억했다. 오전 6시 25분, 동트기 직전 바다에는 어둠이 짙게 깔렸다. 어두운 바다 한가운데서 낯선 검은 물체가 흐릿하게 다가왔다. 가까이에서 보니 속옷만 입은 남성 3명이 뒤집힌 배에 매달린 채 살려 달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구명튜브를 돌고래호 쪽으로 수차례 던졌지만 거센 파도 탓에 계속 실패했다. 10분쯤 지났을까. 조난자 1명이 겨우 튜브를 잡았다. 박 선장은 선원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 전속력으로 배를 반대 방향으로 몰았다. 부인은 안간힘을 쓰며 줄을 끌어당겼다. 얼마나 힘을 썼는지 부인 김 씨의 팔 인대가 끊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3명 모두를 구해냈다.
박 선장은 바다 생활을 품앗이에 비유했다. “바다에서는 모두가 ‘형제’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위험에 처할 수 있거든요. 이번에는 운이 좋아 제가 도울 수 있었지만 반대로 제가 조난당한다면 누군가 절 구해줄 거라고 믿어요.”
박 선장은 이후 일주일 동안 실종자를 찾기 위해 바다로 나갔다. 그 원동력은 서로 의지하고 있다는 믿음이라고 강조했다. 3개월이 지난 지금 박 선장 부부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와중에도 서로 “먼저 가라”며 구조 순서를 양보했던 돌고래호 조난자들을 잊지 못한다. 이들은 뒤집힌 배에 밧줄로 몸을 묶은 채 11시간을 버틴 끝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부부는 자신들의 공을 오히려 이들에게 돌리면서 당시 구조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박 선장 부부는 9월 국민안전처가 선정한 제1회 ‘참 안전인 상’을 수상했다. 포상으로 지급된 수상금의 절반은 한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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