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의 인촌 김성수 선생 집안의 재실에서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의 유배 행로를 추정할 수 있는 글씨가 발견됐다. 한양에서 제주도까지 추사의 유배 행로는 여러 문헌을 통해 알려졌으나 경유지인 전주와 나주 사이 행로는 그동안 가려져 있었다.
12일 고창향토문화연구회(회장 오강석)에 따르면 이번에 확인된 추사의 글씨는 고창군 아산면 반암마을에 있는 인촌 선생 집안의 재실 주련(柱聯·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인 글씨·사진)에 쓴 11점이다. 글의 내용은 대부분 귀양 가는 추사의 심정을 담은 것이다.
추사 금석문 연구가인 이용엽 국사편찬위원은 “추사 중기에 해당하는 이 글씨들은 추사체의 변천 과정을 체계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유배길에 오른 추사는 고창 하오산 마을에 있는 전주 이씨 이문술 집안에서 유숙한 것으로 전해온다. 이문술 집안은 왕실 종친으로 병조판서와 도승지를 배출한 명문가다. 추사박물관 허홍범 학예사는 “추사가 유배지까지 가는 동안 대체로 지방 수령들이 유숙할 곳을 마련해주었다”고 말했다. 추사는 그 보답으로 글씨를 써줬고 이 집안에서 병풍으로 만들어 후손에게 전해오다 6·25전쟁 당시 잃어버렸다고 한다.
오 회장은 “제주도로 유배된 추사는 1840년 9월 20일과 23일 사이 고창 하오산과 인근 반암마을을 지나 전남 장성을 거쳐 나주로 갔을 가능성이 크다”며 “전주 이씨 집안의 문집과 행장(行狀), 비문 등을 연구하면 추사의 유배 행적을 더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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