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산사태 잊었나” 주민 반발… 한우산 풍력발전 건설 난항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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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친환경 좋지만 생명 담보 안된다”
의령군 주민들 발전기 설치 반대
중장비 사이 벌목 소나무만 쌓여

“산사태 위험이 큰데 마구잡이로 공사를 밀어붙이면 안되지요.”

9호 태풍 ‘찬홈’이 남부지방에 피해를 남기고 지나간 13일 오후. 경남 의령군 가례면 갑을마을에서 만난 정영규 한우산풍력발전반대대책위원장은 “2003년 9월 태풍 매미가 왔을 때 산사태로 이웃 6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바로 앞 매봉산을 가리켰다. 청정 밭미나리 고장으로도 유명한 가례면 갑을 양성 개승 봉림리는 한우산(해발 835m), 자굴산(896m), 매봉산(597m)이 감싸 안은 아늑한 마을이다. 주민 수는 600여 명. 근처에는 경남도학생교육원과 사회진흥연수원이 있다.

정 위원장 안내로 주민 6명과 함께 한우산 정상 부근의 풍력발전 공사현장을 찾았다. 꾸불꾸불한 임도(林道)를 따라 20여 분을 올라가야 하는 길이다. 임도 중간에는 ‘한우산 풍력발전 결사반대’라는 현수막이 여러 개 내걸렸다. 정 위원장과 생태마을 갑을골권역 이석수 사무장은 “풍력발전이 친환경이라고 하지만 주민 생명을 담보로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절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성옥 대책위 부위원장은 “산불 진화와 산림자원 활용 차원에서 건설한 임도가 결국 우리에게 화(禍)로 돌아온 꼴”이라고 말했다. 임도가 없었다면 풍력발전이 추진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유니슨 출자회사인 의령풍력발전㈜(대표 이형대)은 한우산과 자굴산 능선을 따라 발전기 설치를 위한 벌목과 터파기 공사를 마쳤다. 수천 그루의 소나무가 잘려나갔고 황토 흙은 속살을 드러냈다. 한우산과 매봉산이 만나는 지점의 5번 발전 탑이 들어설 곳에는 지름 15m 정도의 원형 콘크리트 기초가 설치돼 있었다. 68m 높이의 철탑을 세운 뒤 지름이 25m인 날개를 달 예정이다.

중장비와 철근 사이에는 잘라낸 아름드리 소나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주민들이 5월 말부터 농성을 벌이며 내건 풍력발전 반대 현수막도 걸려 있었다. 농성은 의령군과 의령풍력발전, 대책위의 3자 간담회(8일)에 따라 잠시 중단했다.

주민 김애란 씨(52)는 “마을 뒷산은 경사가 심해 산사태 위험이 높다”며 “환경 훼손과 소음, 저주파 공해도 문제지만 주민 안전을 위협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여영국 경남도의원이 최근 공개한 산림청 산사태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의령 풍력발전 예정지는 경사도 1등급의 급경사 지역이 많다. 한우산 아래 마을과 가장 가까운 철탑과의 거리는 500m 정도. 주민들은 25개 중 1∼7번을 제외한 철탑이 마을에서 보인다고 주장했다.

최근 곽진옥 의령군 부군수는 고소고발로 맞선 대책위와 유니슨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으나 해법을 찾지 못했다. 대책위는 풍력발전 설치 예정지 변경, 발전 용량 증설(2MW)을 통한 철탑 수 축소, 저주파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석득원 유니슨 부장은 “지리적인 여건 탓에 대용량 발전기는 설치가 어렵다”며 “산사태 우려를 낳고 있는 20∼25번 철탑의 위치 변경은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책위의 핵심 요구는 수용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의령풍력발전은 3개 산등성이 3.58km에 750kW짜리 풍력발전기 25기를 설치할 계획이다. 사업비는 496억 원. 풍력발전이 가동되면 연간 4만1600M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의령군 전체의 60%인 8400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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