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의 어제와 오늘을 지켜 온 원로들이 20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를 나란히 걷고 있다. 왼쪽부터 김원길 박윤근 김장환 심대섭
씨. 인터뷰에 함께하지 못했던 이존진 씨(오른쪽)는 사진 촬영 소식을 듣고 이날 합류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여기는 호박밭이었고, 저기는 발전기를 돌리던 곳이었고….”
김장환 전 명동상가번영회장(86·현 중구문화원장)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쳐다봤다. 호박밭과 발전기는 온데간데없었다. 그 대신 높다란 건물만 솟아있었다. 서울 한가운데 32만2816m²의 땅, 상점 3311개가 영업 중인 곳. 연간 외국인 관광객 850만 명이 찾는 한국의 대표 관광지 명동에서 옛 모습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의 명동을 만든 사람들이 김장환 전 회장을 포함해 박윤근 전 부회장(86), 심대섭 명동의류 회장(84), 권태성 현 명동친목회장(76) 등이다. 이른바 ‘명동 원로’다. 1982년 ‘명동 되살리기 운동’을 시작했던 때부터 지금까지 이들은 평일 오전 10시면 어김없이 모여 모닝커피를 마신다. 15일 이들이 모인 자리에 함께하며 명동의 어제와 오늘을 들어봤다.
1960년대 명동에 문화예술인이 모여들었다. 고급 양장점이 유행을 선도했다. 그러나 1970년대 서울의 재개발 붐이 일면서 명동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민주화 시위로 시민들과 경찰이 대치하면서 상가는 아예 개점휴업 상태였다. 이때 명동 되살리기 운동이 시작됐다.
“직접 동남아 시장을 둘러보고, 건축가와 함께 스티로폼으로 명동 모형을 만들었지. 도시계획법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옆 건물만큼 높여라, 밝은 색상으로 통일해라 이러면서 명동이 만들어진 거야.”(김장환) “우리나라 최초로 전선을 땅에 묻었고 느티나무를 심었어. 왜 남의 가게 앞 땅을 파냐며 항의가 쇄도했지.”(박윤근)
이렇게 명동의 밑그림이 완성됐다. 1990년대 강남상권에 밀려 주춤했지만 2000년대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명동은 다시 우뚝 섰다.
“국립예술극장 되찾은 거, 그건 꼭 이야기해야지.”(박윤근)
문화가 사라진 명동은 한계가 보였다. 1995년부터 명동 상인 사이에서 옛 국립극장 되찾기 운동이 일어났다. 관(官)이 시킨 것도, 예술인이 먼저 나선 것도 아니었다. 국립극장을 허물고 10층짜리 사옥을 짓는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명동 상인이 자발적으로 서명을 시작한 것이다.
“1만 명 서명을 들고 안 찾아간 사람이 없어.”(김장환)
고 김수환 추기경, 송월주 스님, 고건 전 서울시장, 김종필 전 국무총리, 남궁진 전 문화관광부 장관, 정대철 고흥길 전 국회의원 등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장면 박사가 저격당한 곳이라) 역사성이 있어. 그거 사야 혀”라고 해 예산 400억 원을 지원받았다. 이어 명동 부동산 중개인이 나섰다. 감정가 840억 원짜리 건물을 8차례 유찰시켜 395억 원까지 떨어뜨렸다.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국립극장은 되살아났다.
이들은 벌써 33년째 아침마다 명동의 미래를 놓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토론을 한다. “명동과 남산이 연결돼야 쇼핑과 관광이 연계된다. 지하철역에서 곤돌라 타고 남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다.”(김장환) “기업형 노점상이 늘면서 세금 내고 임차료 내는 입점 가게들이 어려움이 많다.”(권태성) “국립예술극장에서 연극만 하니 젊은 고객이 안 온다.”(심대섭)
이들이 기억하는 명동의 최전성기는 언제일까. “명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최고 전성기야. 늘 화려하게 부활하곤 했지.”(권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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