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세종대왕-정약용 된 아이들 “한국인인 내가 자랑스러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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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자녀들 ‘역사의 위인’ 연극 공연
정체성 혼란 12명 유적지 탐방도… 동질감 생겨 학교 적응 쉬워져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열린 위인극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궁중한복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열린 위인극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궁중한복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집현전 학자들이 잠이 들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잠을 잘 수가 있겠느냐.”

세종대왕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최지우 양(12)은 곤룡포가 잘 어울렸다. 한국어 발음도 정확했다.

지난달 27일 오후 4시 서울 용산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는 다문화자녀들이 세종대왕 정약용 유관순 등 한국의 위인으로 변신한 연극 ‘너도 나도 대한민국’이 공연됐다. 지우 양을 포함해 유아미나 양(12), 노써니 양(10), 정이안 군(9) 등 함께 공연한 아이들이 무대 인사를 하자 ‘와우’ 하는 탄성과 함께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방글라데시 러시아 베트남 중국 캐나다 등 관람객의 국적도 다양했다.

○ 오늘은 내가 한국의 위인


연극 ‘너도 나도 대한민국’은 2월 한 달간 다문화자녀 12명이 모여 역사 속 위인을 공부한 뒤 만들어졌다. 상명대 행복가족지원센터와 용산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함께 운영하는 역사를 통한 정체성 향상 프로그램이다. 상명대에 다니는 김성환(23), 오태영(29), 권양지 씨(22·여)가 다문화자녀 12명에게 세종대왕 정약용 유관순을 가르쳤다.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경기 남양주시 다산유적지도 함께 다녀왔다. 김 씨는 “아이들이 ‘역사를 공부하면서 한국을 좋아하게 됐다’고 말할 때 가장 뿌듯했다”고 말했다.

부모 가운데 한 명이 외국인이지만 아이들은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변에서는 외국인으로 바라본다. 이런 괴리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연극 연습 중에 한국이 아닌 아빠 또는 엄마 나라의 이야기만 하거나 아예 언급을 하지 않는 아이도 있었다. 한 달이 지나자 서서히 변화가 나타났다. 아이들이 “한국이 자랑스럽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지우 양은 “유관순이 없었다면 한국은 아직 일본의 식민지였을 것 같다”고 말했다. 써니 양도 “백성들이 힘들어하는 거 알고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 역사가 학교 적응에 도움


감춰졌던 상처가 드러난 아이도 있었다. 정약용을 연기한 김선아 양(13)은 연극을 하고 난 소감을 물으니 “꼭 한국인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어보니 “다들 외국인이라고 하니까…”라며 얼버무렸다. 그래도 선아 양은 “원래 공부를 잘 못했는데 정약용같이 훌륭한 사람을 보니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됐다. 이번 프로그램을 담당한 용산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박초롬 씨(25·여)는 “역사를 공유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동질감이 생기기 때문에 학교에 적응하기 쉬워진다”고 말했다.

현재 다문화교육은 아빠 나라, 엄마 나라 한쪽의 정체성을 강요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뤄진다.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격려하고 있다. 다만 학령기 아이들은 한국사를 배우는 일이 중요하다. 황혜신 용산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은 “한국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왜 나만 다를까’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되므로 역사를 배우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위인#연극#집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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