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은택]두 학부모의 슬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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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택 기자
이은택 기자
“저도 교육감님처럼 우리 아이를 외고에 보내고 싶었습니다.”

6·4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진보 교육감들이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30일 자사고 학부모들이 서울시교육청을 찾았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자사고 폐지 정책에 항의하고자 면담을 요구한 것. 조 교육감과 학부모들은 시교육청 접견실에서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잠시 뒤 학부모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방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는 자신의 아이도 조 교육감처럼 외고에 보내고 싶었지만 아이의 뜻을 존중해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래도 공부는 시켜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게 자사고였다”며 “왜 우리 아이가 다니는 자사고는 나쁜 학교라며 없애려 하고(지정 취소), 교육감님 아들이 졸업한 외고는 가만두느냐”면서 울먹였다.

다음 날 시교육청 홈페이지에 한 학부모의 글이 올라왔다. 시교육청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9월 전국고교연합학력평가(모의고사)를 취소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였다. 자신을 고2 자녀의 엄마라고 밝힌 글쓴이는 ‘강남 학교들은 자체 재정으로 시험을 치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희 애가 다니는 학교는 그렇게 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어찌하면 좋을까요’라고 말했다. 자녀를 강남의 좋은 학교에 보내지 못해 모의고사도 포기할 처지에 놓인 엄마의 글은 읽는 이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진보 교육감들이 공통공약으로 내걸었던 자사고 폐지를 추진하는 것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공약은 투표장에서 한 표를 행사한 유권자와의 약속이고 원칙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5년째 학생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를,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된 교육감이 지정 취소를 하려 한 것은 조급했다. 재지정 평가방법이 부실하게 만들어졌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조 교육감은 결국 공약시행을 1년 뒤로 미뤘다.

조 교육감이 ‘자사고 폐지’ ‘혁신학교 확대’ 같은 큰 그림에만 매달리는 사이 모의고사는 ‘예산 부족’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취소됐다. 서울의 고교 1, 2학년생 20만 명이 볼 시험이었다. 인터넷에는 시험을 준비해 온 학생들의 허탈한 심정을 담은 글이 잇따랐다.

큰 정책을 집행하거나 바꾸는 과정에서 변화로 인한 피해는 늘 존재한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정책은 없기 때문에 일부 희생을 감수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결정에 대한 고민이 좀 더 깊어져야 할 때가 있다. 특히 피해자가 아이들일 때 더욱 그렇다. 세월호 참사가 전 국민의 분노를 샀던 것은 사상자가 많았다는 점뿐만 아니라 희생자 대부분이 앳된 고교생이었기 때문이다. 자라나는 청소년은 성인들보다 더 특별하게 보호받아야 한다.

‘나무보다 숲을 보라’는 말이 있다. 일을 할 때 큰 그림을 먼저 보라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조 교육감은 숲을 보는 정성만큼 나무도 세심히 봐야 할 것 같다. 조 교육감의 결정에 따라 베어질지 모르는 한 그루, 한 그루가 바로 우리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이은택·정책사회부 nabi@donga.com
#진보 교육감#자율형사립고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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