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예순, 마임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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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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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마임의 선구자 유진규씨… 19∼24일 데뷔 40년 기념공연
후배들이 대표작 헌정공연도

국내 마임의 선구자, 1세대 마임이스트, 춘천마임축제 탄생의 주역….

유진규 씨(60·사진)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한둘이 아니다. 마임을 논할 때 유 씨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국내 마임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마임을 시작한 지 올해로 40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19∼24일 춘천 축제극장 몸짓에서 ‘마임 인생 40년, 발가벗은 유진규’ 공연과 전시가 펼쳐진다. 공연을 앞두고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그를 14일 춘천의 한 교외에서 만나 40년 추억을 되짚어봤다.

그가 마임을 처음 접한 것은 고교 시절이던 1968년. 독일 마임이스트 롤프 샤레의 공연을 보고 푹 빠져들었다. 1시간 반 동안 말 한마디 없는 공연이었지만 말로 전하는 것 이상으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유 씨는 당시의 충격을 “살이 떨릴 정도였다”고 표현했다. 이 때문에 1970년 대학에 진학해서도 교내 극단에 빠져 살았다. 급기야 다음 해 말 학교를 그만두고 전위 극단인 ‘에저또’에 몸을 담았다. 본격적인 마임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였다. 유 씨는 자퇴에 관해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못 했다. 그러다 보니 더 좋아하는 일을 택했다”고 말했다.

1972년 우리나라 최초의 무언극 ‘첫 야행’을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그러던 그가 1981년 돌연 무대를 떠나 전혀 연고가 없던 춘천으로 터전을 옮겼다. “작품 행위가 무의미해졌고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과 복잡한 서울 생활이 싫었다. 그리고 결혼 후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고 싶었다.”

춘천에서 그는 소를 키웠다. 하지만 소 값 파동으로 시련을 겪은 뒤 1987년 소를 모두 처분했다. 앞서 강원대 앞에 문을 연 카페 ‘아름다운 사람’ 운영에 전념했다. 유 씨를 찾아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몰려들었다. 카페에서 토요일마다 퍼포먼스를 펼쳤다. 마임으로의 복귀였다.

1988년 마임이스트들과 어울려 마임 열정을 다시 지폈다. 서울을 오가며 활발한 공연을 펼쳤고 1989년 춘천마임축제의 모태가 된 ‘한국마임페스티벌’을 처음 열었다. 그 후 춘천마임축제는 세계 3대 마임축제의 하나로 성장했다. 춘천에 마임 전용극장도 문을 열었다.

예순의 나이에도 그의 마임은 계속된다. 2008년 ‘빨간 방’을 시작으로 ‘하얀 방’, ‘까만 방’ 등 방 시리즈를 잇달아 내놓았다. 앞으로 ‘파란 방’과 ‘노란 방’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40년 기념공연에서 유 씨는 자신의 대표작 ‘빈손’을 공연한다. 후배 마임이스트들이 그의 작품 ‘유언장’, ‘밤의 기행’, ‘건망증’ 등을 재해석한 헌정 공연도 펼친다. 다음 주 6일 동안 춘천은 마임의 세계로 빠져 든다.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춘천#강원#마임#유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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