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보증서 사후검증 규정 있었지만 10년간 무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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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전 ‘짝퉁부품’ 사용 파문

원자력발전소 부품 품질보증서 위조사건과 관련해 한국수력원자력이 보증서가 진짜인지 확인하도록 한 내부 규정을 어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올 2월 고리원전 정전 은폐사고 당시에도 지적된 ‘매뉴얼 경시’ 관행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원전의 안전규정을 미국에만 의존해온 원전 당국의 안일한 행태가 이번 사건을 낳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6일 지식경제부와 한수원에 따르면 이번에 적발된 8개 원전 부품업체는 브로커업체 한 곳으로부터 미국의 품질인증 기관인 UCI 명의의 위조 보증서를 발급받아 한수원에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한수원은 부품업체들이 제출한 품질검증서의 진위를 사후에 확인하도록 돼 있는 내부 규정(기자재 인수검사 절차)을 무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앞서 한수원은 올 2월 정전 은폐사고 때에도 작업자들이 발전소 예방정비를 할 때 따라야 하는 ‘시험절차서(TP)’를 지키지 않아 문제가 됐다. 절차서에 따르면 전기차단기를 하나씩 내리도록 돼 있지만 당시 현장 작업자는 두 개를 동시에 내려 발전소가 정전에 이르렀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품질보증서가 위조된 다이오드, 퓨즈, 스위치 등 부품들이 높은 인증기술이 필요 없는 ‘범용’ 부품인데도 미국의 품질검증 업체 12곳 중 한 곳을 반드시 거치도록 한 한수원의 관행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12개 업체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정한 품질검증 기관 명단(리스트)과 정확히 일치한다.

원전 전문가들은 국내에 품질인증기관들이 있는데도 한수원이 굳이 미국의 ‘NRC 리스트’를 따른 것은 한국의 초기 원전기술이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와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 등에 철저히 의존한 데 기인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미국에서 원전 기자재를 도입하면서 관련된 안전 규정도 함께 가져왔다는 것이다. 단가가 낮은 범용부품을 생산해 이윤을 남겨야 하는 중소 부품업체들은 미국에서 품질보증서를 받는 비용을 아끼려다 보니 브로커의 검은 유혹에 빠져들게 됐다는 것이다. 원전 부품업체가 미국에 샘플을 보내 품질보증서를 발급받는 데에는 한 달 이상의 기간과 건당 300만 원의 비용이 든다.

한 원전전문가는 “미국에서 원전을 수입한 1970년대에는 한국에 마땅한 품질검증 업체가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 만큼 일찌감치 규정을 바꿔야 했다”며 “한수원이 행정편의주의에 빠져 등한히 한 게 이런 사태를 불렀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홍석우 지경부 장관은 5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향후 원전 품질검증에 국내 인증·시험기관을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한편 지경부와 한수원은 위조된 품질보증서가 더 있는지 추가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다. 아직은 UCI를 제외한 나머지 11개 검증기관이 발급한 보증서에 대해선 일부 표본만 조사를 마친 상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도 이르면 이번 주 안으로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해 품질보증관리체계 전반을 철저히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또 광주지검 특수부(김석우 부장)는 수사 의뢰된 8개 납품업체에 대해 최근 압수수색을 벌였다고 6일 밝혔다. 8개 납품업체 중 7곳이 광주·전남에 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한수원#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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