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비틀’ 술취한 수학여행 버스들… 아이들이 위험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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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학용 등 음주운전 잇따라… 견학시즌 앞두고 대책 시급

“학생들을 태운 통학버스 운전사가 술 마신 것 같으니까 빨리 출동해 주세요!”

13일 오후 11시경 경찰에 이 같은 전화 신고가 접수됐다. 서울 광진구의 한 고등학교 통학버스 운전사가 술 취해 운전대를 잡고 출발했다는 내용이었다. 출동한 경찰이 달리던 버스를 멈춰 세웠을 때 안에는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 20여 명이 타고 있었다.

버스 운전사 A 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7%. 면허 정지 100일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음주운전 버스를 1km가량 타고 온 학생들은 놀라 황급히 다른 버스와 지하철로 갈아타야 했다. 하지만 A 씨는 “점심 먹으면서 소주 한두 잔 마셨을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0.07%면 불과 몇 시간 전 소주 반 병 이상은 마신 것”이라며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고 말했다. 음주운전 기준은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이다.

초중고교생의 수학여행이나 통학을 담당하는 버스 운전사 일부의 ‘안전 불감증’과 학교, 경찰 등의 부실 관리로 학생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지금처럼 손놓고 있다가는 현장학습과 수학여행이 몰려 있는 9, 10월 대형 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4월 서울 중랑구 신내동에서 현장학습을 떠나는 학생 40여 명을 태운 버스 운전사 황모 씨(39)가 혈중 알코올 농도 0.071% 상태로 버스를 몰다 경찰에 적발됐고, 6월 금천구 시흥동에서 적발된 수학여행 차량 운전자 김모 씨(48)도 혈중 알코올 농도 0.062% 상태였다.

사설 학원이나 유치원 승합차도 학생 안전을 위협하기는 마찬가지다. 1월 설 연휴가 끝나고 학원에 갔던 김모 양(7)은 혼자 차에서 내리다 넘어졌지만 운전자는 이를 모른 채 그대로 출발했다. 김 양은 승합차에 깔려 숨졌다. 운전자는 이 학원 원장이었다. 어린이 통학버스에는 보육교사가 반드시 동승해야 한다는 규정을 무시해 발생한 사고였다.

도로교통법상 13세 미만 어린이를 태운 통학버스는 △어린이 통학버스로 관할 경찰서에 신고한 뒤 △보육교사가 동승하고 △운전자나 동승교사가 직접 승하차문을 열고 닫아주며 승하차를 도와주도록 돼 있다. 하지만 규정을 잘 지키지 않다 보니 통학버스 관련 사고는 해마다 200∼400여 건에 이르고 있다. 목숨을 잃는 어린이도 한 해 10명이 넘는다.

관광버스 업체의 ‘노후 차량 끼워 넣기’도 학생의 안전을 위협한다. 대부분의 학교가 버스를 직접 점검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관광버스 업체가 신형 버스 배차를 약속한 뒤 출발 당일 노후 차량을 제공하거나 무보험이나 무면허 등 부적격 운전자를 배치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교육청별로 ‘3∼5년 이내의 버스를 이용하라’는 지침을 각급 학교에 주고 있지만 권고사항일 뿐이다. 5월 광주에서는 학교 측이 체험학습 출발 전 버스를 점검한 결과 ‘출고 5년 이내 차량 제공’이란 계약과 달리 9대 중 5대가 노후 차량이었고 안전띠 불량도 다수 발견돼 행사 자체를 취소했다.

이처럼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실제 적발되는 경우도 적고, 적발된다 해도 처벌 수위는 매우 낮다. 처벌 규정 또한 학생을 태우는 대형 버스와 일반 승용차가 같다. 음주 단속 시에도 버스는 운전사가 술을 마셨을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해 그냥 보내는 경우가 많다. 경찰 관계자는 “대형 버스처럼 사업용 차량은 운전사가 생업으로 운전하기 때문에 음주운전 확률이 낮다고 보고 10대 중 1대 정도만 음주 측정을 한다”고 말했다.

대형 버스 운전사의 경우 관광버스 업체에 소속돼 있지만 버스는 자신의 소유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면허정지 100일 등의 처벌을 받아도 이후 다른 업체에 취업하면 그만이다. A 씨의 경우에도 면허정지 100일 뒤 다른 업체에 취직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관광버스 업체를 처벌하기도 쉽지 않다. 도로교통법상 ‘법을 위반한 행위자 외에 소속 법인 또는 개인에 대해서도 벌금 또는 형을 과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실제 처벌이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경찰 관계자는 “관광버스 업체가 운전사 음주 등의 과실을 방관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려워 업체까지 함께 처벌하기는 어렵다”며 “대형 버스나 택시 등의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라고 밝혔다.

박용진 계명대 교통학과 교수는 “학교가 버스를 빌릴 때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음주나 무면허 등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버스회사 영업을 정지시키는 등 보다 강력하게 제재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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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통학버스#음주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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