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사례 확인도 않고… 피해학생 두번 울린 교육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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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생이 있습니다. 수업시간에 잠자는 같은 반 짝꿍 옆구리를 찌르며 일어나라고 했던 행동이 학교폭력으로 신고됐습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회부되고 교내 봉사 3일과 서면사과가 결정됐습니다. 그리고 학교생활기록부에 올라갔습니다. 7년 동안 지워지지 않습니다. 기록은 아이가 대학에 갈 때도 남습니다. 딱한 일입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사진)이 23일 ‘학생부 학교폭력 기재는 개선돼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에서 제일 먼저 했던 말이다. 이 학생은 정말 친구의 옆구리를 찔렀다는 이유만으로 학교폭력 가해자로 기록됐을까. 본인이 억울하다고 생각할 만한 사례일까.

○ 가해학생은 억울하다?

김 교육감은 이날 “해당 학생에게는 (입시)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끼쳐 너무 억울한 일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학생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학교폭력에 대해서는 엄중한 조치가 필요하나, 장래의 기회까지 박탈하거나 주홍글씨를 새기려는 또 다른 폭력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사례는 울산 A중학교에서 올해 4월에 일어났다. 울산시교육청이 당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2학년 B 군과 C 군은 D 군에게 “왜 머리를 감지 않았느냐”며 모욕감을 줬다. 수업시간에는 D 군 앞뒤에 앉아 옆구리를 찌르거나 발로 툭툭 찼다. 말로 놀리기도 했다. 보고서에는 ‘언어적 놀림과 신체적 폭력을 수차례 지속적으로 행했다’고 적혀 있다.

담임교사와 교감은 기자의 확인요청을 거부했다. 이번에는 보고서를 작성했던 울산시교육청 장학사에게 물었다. (김 교육감의 말처럼) 정말 옆구리만 찔렀는데 학교폭력으로 처리했냐고.

장학사의 대답은 확고했다. “단순하게 옆구리 한 번 찌른 게 아니다. 언어폭력과 발로 툭툭 차는 등의 신체폭력이 지속적으로 4, 5번 있었다” “학교폭력이 경하냐 중하냐는 교육감이 결정하는 게 아니다. 그건 피해학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설명이 이어질수록 그의 목소리는 더욱 올라갔다. “상대적으로 약한 징계를 받았어도 학교폭력은 학교폭력이고, 학교폭력 여부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판단한 거다. 그리고 징계사항을 현행법에 따라 학생부에 기재했다. 그걸 들어 사안이 경미한데 왜 기재하냐고 하면 안 된다.”

○ 피해학생의 고통은?


울산 사례는 김 교육감의 기자회견 이후 국회에서도 거론됐다. 27일 열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 일부 의원들은 “정말 가해학생이 딱한 경우인 거냐”고 물었다.

하지만 이홍동 경기도교육청 대변인은 29일 “사안을 피해학생에게 확인하진 않았다. 가해학생 학부모 중 한 명이 학생부 기재에 대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한 소장(訴狀)을 보고 기자회견에서 인용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피해학생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겠냐는 질문에 이 대변인은 “소장을 인용했다”고만 답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가해학생 학부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너무 미미한 게 학교폭력으로 기재돼 졸업 후까지 남는다니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은 “같은 언어폭력이라도 자살하면 심한 학교폭력이고, 아니면 별 게 아닌 거냐. 제3자가 고통을 판단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다른 교육계 관계자도 “자기 관할이 아닌 학교 사례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별 거 아니라고 말해선 안 된다. 피해학생에게 또 상처를 줬다”고 지적했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29일 열린 한국교육개발원 4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에서 “사소한 학교폭력도 범죄다. 학생이니 그럴 수 있다는 식으로 넘어가면 학교폭력을 근절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김상곤#학교폭력#학생부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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