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 씨가 ‘영재고철’ 계좌를 통해 괴자금을 보유했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이 한발 빼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검찰이 ‘헛발질’을 한 것 아니냐는 섣부른 예상도 나온다.
21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입수한 ‘영재고철’ 계좌 거래 명세에 따르면 2001∼2008년 이 계좌의 주인 박석재 씨(영재고철 실소유주인 박영재 씨의 동생)는 S자원, H산업 등 거래처와 수백만∼수천만 원대의 돈을 수시로 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이 수백억 원의 입출금이 이뤄졌다고 밝힌 계좌에는 이달 19일 현재 805만3916원만 남아 있었다. 노 씨의 ‘비자금 저수지’ 의혹이 실제보다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 한발 물러선 검찰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창원지검 특수부(부장 김기현)는 이날 “문제의 계좌를 노 씨와 연관짓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뭉칫돈이 현재 남아 있는 것이 아니고 거래한 자금 흐름이 있었다”고 밝혔다. 사흘 전인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자금 추적 과정에서 그동안 나온 금액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거액이 오간 의심스러운 계좌가 건평 씨 주변 사람에게서 발견됐다”고 설명한 것에서 크게 달라진 태도다. 당시 검찰은 “두 사람 간 돈거래가 많아 (해당 계좌 주인을) 건평 씨의 자금관리인으로 의심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을 이용하려 한 주변인 때문에 생긴 일로 보고 있다”고 말해 노 씨를 겨냥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검찰이 기존 태도를 뒤집으면서 이번 수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박 씨와 노 씨의 의심스러운 자금 거래를 규명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400여 차례에 이르는 입출금 명세를 모두 추적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은 계좌 추적이 마무리되는 대로 박 씨 등을 불러 노 씨가 비자금 관리를 맡겼는지, 자금세탁을 의뢰했는지를 추궁할 방침이다.
○ ‘문제 계좌’ 직접 들여다보니
노 씨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의심받고 있는 영재고철 실소유주 박영재 씨는 이날 경남 김해시 진영읍에 있는 회사에서 동생 석재 씨 명의로 된 계좌를 동아일보에 공개했다. 검찰이 “2005년부터 2008년 5월까지 수백억 원의 의심스러운 자금 흐름이 있다”고 밝힌 그 계좌다. 이 계좌는 석재 씨가 2001년 3월 농협중앙회 진영지점에서 개설했다.
영재고철은 2005∼2008년 하루 평균 10∼20여 업체 또는 개인과 거래를 했다. 총 거래 횟수는 1만7000여 차례. 이 기간에 539억 원이 입금됐고 540억 원이 출금됐다.
한 업체 또는 개인당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이 오갔다. 하루 거래량도 수천만 원에서 3억 원까지 다양했다. 검찰이 “계좌를 확인하려면 적어도 10일 이상 걸린다”고 밝힌 것도 이런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거래금액 편차가 큰 데 대해 박 씨는 “현금 부족으로 자금이 사흘 정도 밀리면 하루 거래금액이 당연히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계좌에서 건평 씨나 친인척, 측근 등의 이름이나 거액의 뭉칫돈은 없었다. 다만 겉으로 드러난 거래 명부만으로는 금액이 건평 씨의 비자금인지는 판단할 수 없었다. 계좌에 드러난 개인이나 업체 가운데 차명으로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언론에 공개한 계좌에서 건평 씨와 그 주변 인물, 또는 차명으로 된 사람 혹은 회사와 거래한 적은 단연코 10원도 없다”고 말했다.
○ 검찰이 의심하는 ‘2008년 5월 이후 거래가 왜 끊겼나’ 확인했더니
취재팀은 검찰이 ‘2008년 5월까지 (돈이) 계속 왔다 갔다 하다 이후 흐름이 끊겼다’고 밝힌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2008년부터 최근까지 거래 명세도 확인했다. 2007년까지 영재고철은 농협중앙회 통장을 사용했지만 2008년 1월부터 진영단감농협에 새 계좌를 개설했다.
박 씨는 “국세청이 개인계좌를 사용하고 있는 업체에 성실납세 및 성실신고를 위해 ‘사업용 계좌’를 개설할 것을 요구하면서 단감농협에서 ‘사업용 계좌’를 개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계좌를 확인했더니 예전 농협 계좌처럼 개인 및 업체와의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다. 2008년 5월 이후에도 많게는 20차례 이상 출입금이 반복됐다. 이 계좌에서도 건평 씨의 측근 이름은 없었고 차명 여부는 알 수 없었다.
한편 2008년 창원지검 조사에서 새롭게 나온 게 없어 내사 종결됐다는 박 씨의 주장과 달리 박 씨의 동생인 석재 씨가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돼 2009년 6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았다.
김해=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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