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서울대 합격보다 힘든 ‘텃밭’ 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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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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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기숙사 텃밭 인기… 신청 하루만에 마감

17일 개강한 서울대 텃밭학교 ‘스누팜’ 참가자들이 서울대 기숙사 건물 옆 텃밭에서 삽과 곡괭이, 호미를 들고 땅을 파고 있다. 대부분 농사를 처음 지어보는 ‘농사 초보’인 참가자들은 올해 상추 치커리 시금치 등을 재배할 계획이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17일 개강한 서울대 텃밭학교 ‘스누팜’ 참가자들이 서울대 기숙사 건물 옆 텃밭에서 삽과 곡괭이, 호미를 들고 땅을 파고 있다. 대부분 농사를 처음 지어보는 ‘농사 초보’인 참가자들은 올해 상추 치커리 시금치 등을 재배할 계획이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소변만큼 좋은 거름이 없어요. 집에서 소변을 모으셔야 합니다. 오늘부터 여러분 모두 농부가 된 거니 이런 일도 민망하지 않죠?”

17일 오후 3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 기숙사 ‘관악사’ 다인홀. 이복자 전국귀농본부 총무이사가 느닷없이 꺼낸 소변 얘기에도 사람들은 진지하게 수첩에 주의사항을 적었다. 이날은 서울대 텃밭학교 ‘스누팜’의 개강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날. 80석이 꽉 차 늦게 도착한 20여 명은 선 채로 이 총무이사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연구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 싶어 지원했습니다.” “제가 먹을 건 제 손으로 한번 길러보고 싶습니다.” 강의가 끝난 뒤 학생들이 저마다 참가 이유를 밝히자 박수가 쏟아졌다.

서울대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텃밭을 가꾸기 시작한 건 지난해 2학기부터. 올해는 9일 텃밭 분양을 시작하자마자 신청이 폭주해 75명 정원이 하루 만에 꽉 찼다. 현재 밭이랑을 늘리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430m²(약 130평) 땅에 이랑이 33개 있는데 2∼6명이 조를 짜 이랑 하나를 맡는다. 스누팜 운영진인 농생대 원예과학과 4학년 오희덕 씨(21)는 “일반 참가자까지 합치면 총 150명으로 지난해보다 50여 명이 늘었다”며 “올해는 대학 텃밭 네트워크인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해 더 체계적으로 농사를 배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해 텃밭학교에서는 상추 치커리 시금치 들깨 고추 감자 등 여러 작물을 화학비료 없이 키우는 유기농법으로 재배한다. 수확을 한 뒤에는 김장도 함께할 예정이다.

결석을 3회 이상 하면 밭을 회수하는 등 규정도 엄격하다. 수강료가 조당 1만 원으로 저렴한 대신 수확한 작물의 10%를 불우이웃에게 기부한다.

대학 안에 텃밭을 마련해 대학생들이 농사를 짓는 텃밭동아리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경희대 한밭대 등 전국 10여 개 대학으로 확산되고 있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에 따르면 동아리에 참여해 농사를 짓는 학생만 2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에는 전국 텃밭동아리 모임을 갖기도 했다.

관악사는 이번 텃밭학교에 용지를 제공하고 괭이 호미 등 농기구 마련에 도움을 주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김성희 관악사 사감은 “요즘 학생들을 만나 보면 학업이나 취업 스트레스로 상실감이나 허탈감, 좌절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며 “학생들이 텃밭을 가꾸면서 얻는 성취감이 학교생활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돕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텃밭학교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작물이 자라고 열매 맺는 과정을 체험하며 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배웠다”고 입을 모았다.

물리천문학과 4학년 정보슬 씨(23)는 “입학한 뒤 다른 학생들과의 경쟁과 비교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밭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휴식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며 “삶의 균형을 찾고 싶어 텃밭 농사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자유전공학부 4학년 강소정 씨(23)는 “취업을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지만 하고 싶은 일은 그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며 “자연에서 오히려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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