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수능 필요없다… 네가 파고들 꿈과 설계도만 보여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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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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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 첫 도입 ‘창의인재전형’ 합격한 3인의 사례

《대학과 기업이 창의적인 인재를 원하는 시대다. 누가 창의적일까. 어떤 자질이나 능력을 갖춰야 할까. 딱 부러지게 ‘누구다’ 또는 ‘이렇다’고 말하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연세대가 2012학년도 입학전형에 처음 도입한 ‘창의인재전형’은 많은 관심을 끌었다. 60.6 대 1의 경쟁률을 거쳐 31명이 뽑혔다. 지원자의 어떤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는지 합격자인 양하눈 양(국어국문학과) 노하영 군(시스템생물학과) 김다민 양(심리학과)의 사례로 알아본다.》
○ 검정고시로 중고 마친 양하눈 양 ‘책 많이 읽으려 진학포기’

양하눈 양(18·사진)은 경기 마북초를 졸업하고 중고교에 진학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하루 5, 6권씩 책을 읽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학교 공부가 너무 힘들었다. 주변에서는 “학교는 안 가고 책만 읽어서 어떡하느냐”며 걱정했지만, 독서 습관을 길러준 부모는 딸을 믿었다.

양 양은 주제를 정하면 관련된 책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역사학, 자서전, 미래학, 학습법, 고전명작, 동화…. 연간 주제와 시간표는 부모가 정해줬다.

책을 읽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1년간의 독서결과를 연말마다 글로 정리했다. 예를 들어 자서전을 읽은 해에는 ‘나의 자서전’을 썼다. 학습법에 관한 책을 읽은 해에는 ‘나만의 학습법’을 정리했다. 이런 글을 모아서 부모가 책으로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7권이 됐다.

양 양은 2010년 경기 용인시의 후원을 받는 청소년 기자단 ‘블루스카이’ 기자로 활동했다. 1998년 기자단 창설 이래 검정고시생은 처음이었다. 양 양은 최근의 판타지 소설과 영화, 게임을 소개하며 과학기술과 신화적 상상력이 만났을 때 얼마나 큰 파괴력을 가지는지를 글로 요약했다. “검정고시생으로 느꼈던 자신감 부족을 다양한 학생과 함께 활동하면서 회복하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글쓰기 법을 알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책을 통해 만난 세상을 직접 찾기도 했다. 특히 중국 일본 캄보디아 터키 베트남 등 다양한 나라의 무덤을 직접 가서 봤다. 양 양은 “나를 감싸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작은지 여행을 통해 알게 됐다. 나만 아는 글을 쓰는 데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다.

대학에 입학할 나이가 됐다. 연세대 입학은 꿈도 꾸지 못했다. 검정고시 성적도 합격선만 넘는 수준이었던 만큼 자신감이 없었다. 하지만 창의인재전형은 창의력을 갖춘 학생을 뽑는다니 책을 많이 읽은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다른 지원자들은 창의에세이 시험 문제를 보고 당황했지만 양 양은 묘하게 안심이 됐다. 보통 학생이라면 이런 문제에 답을 적기 어려울 거라고 짐작했다.

연세대 입학처 관계자는 “대개 학생들은 화려한 수상경력으로 자기 능력을 입증하려 하는데, 양 양은 독서와 글쓰기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자기 이해를 확장하는 통로로 생각하고 발전시킨 점이 높게 평가받았다”고 말했다.

양 양은 한국 신화를 연구해 대중적 작품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정규 공부를 안 했던 만큼 공부를 즐기면서 책도 많이 읽고 한국 신화 연구도 하고 싶다”며 웃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 한국애니메이션고 출신 김다민 양 ‘3년간 영화만 파고들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공부에는 담을 쌓았다. 평범한 고교생이라면 수도 없이 치렀을 모의고사는 두 차례가 전부였다.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부보다는 영화가 재미있었다. 영화를 만드는 데 고교 시절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작품 활동만 했는데 정말 대학에 합격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저도 놀랐다니까요.”

심리학과에 합격한 김다민 양(19·사진)은 영화 제작을 꼭 ‘작품 활동’이라고 표현했다. 김 양은 “주인공을 등장시켜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려면 인간의 심리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훌륭한 연출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영상에 대한 관심은 중학교 때 시작됐다. 여러 영상을 이어 붙이고 배경 음악을 깔아 자신만의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일이 재미있었다. 간단한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은 인터넷을 뒤져 가며 스스로 터득했다. 좀 더 화려한 효과를 넣으려면 고급 프로그램을 써야 했다. 인천에 사는 그는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서울 광화문 인근의 영상 전문 교육기관까지 오가며 사용법을 배웠다.

부모는 “공부나 하라”며 반대하다가 도와주는 쪽으로 바뀌었다. 김 양은 특성화고인 한국애니메이션고 영상연출과에 들어갔다. 입학 경쟁률이 4 대 1이나 됐지만 중학교 때부터 영상 공부를 해온 김 양에게 영상 분석, 시나리오 작성 같은 시험은 어렵지 않았다.

한국애니고에서는 원하던 영상 기술 공부를 마음껏 했다. 학교를 다니며 10여 편의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 그가 감독을 맡은 3편의 영화로 청소년영화제 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여러 대회에서 30여 개의 상을 휩쓸었다.

영화와 관련된 일이라면 학교 밖에서도 적극적이었다. 고교 3학년 때 영상 프로덕션에 인턴으로 선발된 뒤, 놀이공원의 4차원(4D) 영상이나 광고의 컴퓨터그래픽 작업에 참여하면서 영상산업계의 실무를 익혔다.

김 양은 신나게 영화를 만들다가 문득 공부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에 특화된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기술은 많이 배웠지만 정말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니 지식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유학을 가려고 영어 공부를 하다가 연세대가 창의성과 잠재력만 보는 전형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제까지 했던 일, 이제까지 쌓은 경험으로 합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만든 영화와 수상 실적을 제출하고 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들었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면접에서 얘기했다.

면접위원들은 “10여 명의 인원을 이끌고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낸 리더십이 돋보였다. 영화에 담긴 창의적 발상과 남다른 열정에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며 선발 이유를 밝혔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 생물학 심취 대학교재 독파 노하영 군 ‘이과교수 강연 100곳 참석’

서울 여의도고 3학년 노하영 군(18·사진)은 어릴 때부터 집 근처 생태공원에서 풀벌레와 식물을 찾는 놀이를 많이 했다. 중학교 1학년 어린이날에는 1000쪽 분량인 ‘생명, 생물의 과학’이란 생물학 책을 선물받고 재미있게 읽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이런 흥미가 꿈으로 바뀌었다. 광합성에 대한 발표를 준비하다 보니 궁금증이 그치지 않았다. 엽록소가 빛과 이산화탄소를 재료로 해 산소와 에너지를 만든다는 설명만으로는 뭔가 허전했다.

인터넷과 책을 하루 종일 뒤적였다. 광합성을 위한 에너지를 쌓는 명반응과 이산화탄소를 포도당 형태로 고정하는 암반응까지 공부해서 발표했다. 고등학교 단계는 물론이고 대학교 수준까지 공부한 결과였다.

이런 과정에서 생물에 대한 흥미가 깊어졌다. 중학교 수준을 넘어 깊이 있는 공부를 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꼈다.

노 군은 생물학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대학 학부생을 위한 ‘일반생물학’ 책을 보면서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생화학, 필수세포생물학, 유전학 분야의 책을 계속 찾아 읽었다. 실험실과 장비가 필요하면 한성과학고와 서울시 과학관을 이용했다.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대학교수의 강연도 100곳 이상 찾아다녔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내신성적을 걱정했지만 ‘과학고 학생 같은 일반고 생활’은 3년 내내 계속됐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최연소로 국제올림피아드대회 국가대표선발전에 참가했고 한국 생물올림피아드에서 은상을 받았다.

2학년 때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논문으로 서울시청소년과학탐구대회에서 교육감상(금상)을 받았다. 영어 실력은 외국 논문을 보며 키웠다. 텝스 1등급(815점)이 나왔다.

논문을 심사한 서울시교육청 장학관들은 정말 직접 썼는지, 누가 도와주지 않았는지 물었다. 노 군은 “포기하고 싶어 하는 친구 2명을 이끌면서 얻어낸 결과라 더 값진 경험”이라고 대답했다.

노 군은 창의인재전형을 준비하면서 흥미만 가진 게 아니라 실력을 갖췄고, 연구자로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비하고 있음을 함께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면접위원들은 “중학교 때는 생물 관련 전공서적을 읽으며 생물학자의 꿈을 키우고, 고등학교에서는 연구활동을 뒷받침할 여건이 부족했음에도 자신만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까지 길렀다”고 평가했다.

노 군은 나중에 인공세포를 연구하려고 한다. 그는 “세계적으로도 걸음마 단계이므로 이 분야의 선구자가 돼 미래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고 싶다. 학부 시절에는 세포신호 전달 분야를 연구해 과학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을 꼭 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 창의인재전형이란 ::

내신과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100% 입학사정관전형이다. 1단계에서 우수성 입증자료, 창의에세이, 추천서를 종합평가해 일부를 선발한다. 2단계에서는 두 가지 방식으로 최종 합격자를 뽑는다. 면접 서류 창의에세이가 아주 우수한 지원자는 바로 합격하며(우선선발) 나머지는 심층면접(30분∼1시간)을 치러야 한다(일반선발). 창의인재전형은 문과대 이과대 사회과학대 등 순수학문 분야만 대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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