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유목민의 유물엔 왜… 동물이 새겨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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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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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키타이 황금문명전을 통해 본 유목민의 역사


가을에 열매와 곡식이 익듯이 겨울은 우리의 생각을 익히는 계절입니다. 겨울이 되면 울긋불긋한 단풍이 사라지고 거친 바람이 부는 무채색의 세상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차분하게 우리의 생각을 키우고 익히기 좋은 계절이지요.

물론 생각은 그냥 자라지 않습니다. 열매와 곡식처럼 햇빛이 필요하고 거름이 필요합니다. 생각을 위한 좋은 햇빛과 거름으로는 독서와 음악 감상, 전시회 관람을 들 수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신문에는 이와 관련된 정보가 많이 실립니다.

여러분은 신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기사 사진 칼럼 사설 광고를 먼저 떠올리지만 신문사가 주최하는 행사를 안내하는 사고(社告)도 신문에 꾸준히 나옵니다. 이 내용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공부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키워드를 구할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 1월 5일자 A27면을 보니 ‘알립니다-스키타이 황금문명展 어린이 체험교실’이라는 사고가 눈에 들어오네요.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1∼4학년이 스키타이 유물을 만드는 행사라고 합니다. ‘스키타이 황금문명전’은 지난해 12월 1일에 시작했습니다. 다음 달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립니다.

스키타이는 어떤 민족일까요. 기록으로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유목민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기원전 7세기 전후부터 유라시아에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스키타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을 지배하던 왕족을 부르는 그리스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목민은 대체로 초원이나 사막지대에 살면서 목초지를 따라 이동하며 목축을 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들과 달리 최근까지 농사를 짓고 살아 왔습니다. 이동하지 않고 한곳에 머무르며 농사를 짓던 농경민이라는 뜻이지요.

한곳에 머물러 사는 농경민과 계속 이동하며 사는 유목민은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세계를 바라보는 생각이나 행동, 문화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어느 쪽이 더 좋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각각 고유한 특성이 있을 따름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느 쪽일까요. 생활에서 자주 쓰는 물건 가운데 과거에 없던 것을 몇 가지 꼽아 보면 자동차 휴대전화 인터넷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이동과 관계가 있지요? 그래서 현대사회를 새로운 유목민, 혹은 디지털유목민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페르시아-알렉산드로스軍 물리친 그들

스키타이는 대표적인 유목민이었습니다. 유목민은 대체로 문자가 없고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스키타이 또한 그랬기 때문에 알려진 내용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은 기록을 보면 스키타이가 대단한 힘을 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원전 513년(또는 514년)에 당시 세계 최고의 힘을 자랑하던 페르시아가 스키타이와 싸움을 벌입니다. 페르시아는 이집트에서 인도 북부에 이르는 넓은 땅을 가진, 오늘날의 미국보다 더 강한 나라였습니다.

여성의 머리쓰개에 달린 펜던트. 사자와 독수리를 합친 상상의 동물이 단검을 가진 사람을 덮치는 장면을 표현했다.
여성의 머리쓰개에 달린 펜던트. 사자와 독수리를 합친 상상의 동물이 단검을 가진 사람을 덮치는 장면을 표현했다.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는 70만 명에 이르는 군대를 거느리고 스키타이를 정복하기 위해 의기양양하게 진군했습니다. 결과는 페르시아의 완벽한 패배였습니다. 수많은 페르시아의 병사가 전사했고 다리우스 황제는 허둥지둥 도망쳐야 했습니다.

스키타이는 페르시아 군대와 정면으로 맞서 싸우지 않고 말을 탄 기병을 활용해 신기루처럼 홀연히 나타나 공격하고 사라지는 수법을 활용했습니다. 기병의 이용은 유목민의 전형적인 전투방식입니다. 이후 페르시아는 스키타이와 조약을 맺고 다시는 싸우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스키타이와 싸움을 벌인 것은 유명한 알렉산드로스입니다. 기원전 4세기에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는 짧은 시간에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인도 북부까지 정복했습니다. 이 세계적인 사건을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스키타이를 공격한 북방 원정대는 페르시아 군대처럼 패했습니다. 스키타이는 고대세계의 최강자로 군림했던 페르시아와 알렉산드로스의 군대에 모두 이긴 겁니다.

칼에 새긴 동물의 힘도 갖기를 기원

세계사에서 대포와 총이 등장하기 전까지 유목민은 강력한 군사적 힘을 가졌습니다. 유물 가운데 마구처럼 말과 관련된 것이나 칼 같은 무기가 많은 이유입니다.

유목민은 여러 특징을 갖고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황금입니다. 스키타이를 비롯한 여러 유목민은 예부터 황금을 잘 다루었습니다. 중앙아시아에 유목민이 주요 근거지로 삼았던 곳 가운데 알타이 산맥이 있는데 알타이라는 말이 황금을 의미할 정도입니다. 스키타이의 황금유물을 잘 살펴보면 유난히 동물 문양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키타이를 비롯한 유목민은 왜 동물 문양을 좋아했을까요? 아무래도 동물과 가까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농경민이 식물에 깊은 관심을 보였듯이 유목민은 동물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을 테니까요. 현대인이 애완동물을 많이 키우는 것도 현대사회가 유목민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유목민의 역사로 새로운 시각 갖게돼

이경덕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이경덕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유물 속의 동물은 힘을 뜻합니다. 칼이나 칼집에 맹수가 새겨져 있다면 맹수가 지닌 힘이 칼에 깃들기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성격이 담겨 있다고 보면 됩니다. 농경민이 곡식이나 나무에 신격(神格)을 부여해 곡식의 신, 나무의 정령을 생각했듯이 동물과 가까웠던 유목민들은 동물에게 신의 성격을 부여하고 복을 빌거나 점을 쳤던 겁니다.

스키타이 황금문명전 같은 전시회는 우리가 멀어서 가기 힘든 곳이나 고대처럼 갈 수 없는 곳으로 안내해주는 문과 같습니다. 문 너머의 유물이나 작품은 모두 자기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전시회를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닐까요.

낯선 만남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알면 생각 또한 커지겠지요. 신문은 우리 동네,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동네와 다른 나라의 소식까지 자세하게 전합니다. 낯선 만남,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하는 길잡이인 셈이죠. 기사뿐 아니라 사고(社告) 같은 안내문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제부터는 더욱더 눈여겨보세요.

이경덕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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