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고발 동영상 보니, 멈칫멈칫 20분간의 수화… 떨리는 손엔 눈물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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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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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사건’ 실제 피해 학생들이 2005년 6월 21일 광주 인화학교 기숙사에서 성폭행당한 사실을 털어놓으며 수화로 “피해 내용을 말하기부끄러워요”라고 하자(왼쪽 사진) 학부모가 “경찰에 가서 ‘저 사람이다’라고 솔직하게 지목하자”고 설득하고 있다. 전응섭 씨 제공
‘도가니 사건’ 실제 피해 학생들이 2005년 6월 21일 광주 인화학교 기숙사에서 성폭행당한 사실을 털어놓으며 수화로 “피해 내용을 말하기
부끄러워요”라고 하자(왼쪽 사진) 학부모가 “경찰에 가서 ‘저 사람이다’라고 솔직하게 지목하자”고 설득하고 있다. 전응섭 씨 제공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장애인 성폭력 사건을 처음 외부에 알린 이 학교 기숙사 생활지도사 전응섭 씨(49·사진)가 동아일보와 채널A에 공개한 동영상에는 성폭력 사건 폭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동영상은 2005년 6월 21일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기숙사를 찾은 학부모 황모 씨(53)가 피해 학생 2명과 법인 측이 몰래 만나 나누는 대화가 담겨 있다. 피해자가 청각장애인이어서 대화는 20분간 수화(手話)로 진행됐으며 1분 동안 촬영됐다. 동영상에는 피해 학생이 “(성폭력) 피해 학생이 여러 명 있다. 추악하다”고 하자 황 씨는 “경찰에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말을 해야지…”라고 설득했다. 피해 학생이 “창피해요. 부끄러워서 어떻게 이야기를 해요”라고 하자 황 씨는 “내일(22일) 만나 경찰에 신고하고 사실대로 말하자”고 재차 설득했다.

당시 피해 학생 2명 등은 다음 날 오후 1시경 인화학교를 몰래 빠져나와 광주 광산구 송정리 사거리에서 황 씨를 다시 만나 장애인성폭력상담소를 찾아갔다. 피해 학생들은 이날 오후 오명란 장애인성폭력상담소장을 만나 상담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동아일보와 채널A 취재팀은 동영상을 촬영한 전 씨를 3일 광주 남구 월산동 한국농아인협회 광주시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9월경부터 전 씨에게 수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못했고 2개월가량 지속적으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연락해 어렵게 성사된 인터뷰였다.

전 씨는 인터뷰 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빛에서는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도 느껴졌다. 전 씨는 이 학교 여학생들이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2004년 처음 알았다고 한다. 한 피해 학생이 자신의 방으로 와 “보육사 A 씨가 1년 전부터 과자를 준다며 밤마다 불러내 성폭행하고 있다”며 울먹여 놀랐다는 것. 다른 교직원들에게 사실을 알렸지만 “그럴 리가 없다. 확인해 보겠다”고 답한 뒤 시간만 흘러갔다.

가해 교직원들은 학생들을 모아놓고 “전 씨가 여학생을 성폭행했다” “정교사가 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렸다. 그러면서 “대학원 등록금을 지원하겠다”며 회유하는 이중전략을 썼다는 것.

전 씨는 가해 교직원, 법인 측과 외로운 싸움을 했다. 2007년 5월 20일 법인 측에 의해 대기 발령됐고 3개월 뒤 해임됐다. 소송을 통해 2009년 복직해 2년째 근무하며 법인 설립허가가 취소되는 상황까지 지켜봤다.

‘도가니 사건’ 피해 학생들이 2005년 6월 21일 학부모에게 성폭행 사실을 털어놓는 장면을 녹화한 영상. 채널A 뉴스 캡처
‘도가니 사건’ 피해 학생들이 2005년 6월 21일 학부모에게 성폭행 사실을 털어놓는 장면을 녹화한 영상. 채널A 뉴스 캡처
전 씨는 “인화학교 사건이 사회 어두운 곳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인화학교 문제가 가진 자, 힘없는 자로 나누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는 좋은 결말이 맺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사회적 위치가 있는 사람들이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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