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타기 쉬웠는데”…사기범들의 종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31일 12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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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눈 멀어 정상 무릎도 수술해준 의사들도 처벌
순천지역 보험 손해율 전국 1위 이유 있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보험 브로커의 꾀임에 빠져 보험금을 타내려고 정상인 무릎 관절을 일부러 수술한 사실이 경찰 수사로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31일 전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발표한 신종 보험사기단에 연루된 이들은 모두 133명. 현재까지 구속자만 25명에 달하며 사기 금액은 67억원이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보험사기 단일 사건으로 국내 최대 구속자가 나온 것이다.

경찰이 입건된 95명 중 편취 금액이 많은 15명에 대해 추가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어서 구속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보험설계자들에게 보험 가입 고객용 선물을 팔던 보험 브로커 노모(50·여·구속)씨로부터 발단이 됐다.

노 씨는 6년 전 남편이 다리를 다쳐 김포 모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질병으로 무릎 관절경 수술을 하고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과 해당 병원이 무릎 통증을 호소만 하면 관절경 수술을 해준다는 점에 착안, 병원에서 알게 된 브로커 왕모(40) 씨와 함께 신용불량자 등 보험가입자 모집에 나섰다.

이렇게 시작한 사기는 경찰에 붙잡히기 전까지 5년 가까이 지속됐고 챙긴 보험금만 11억원에 달했다.

노 씨의 보험 사기는 급전이 필요한 신용불량자와 사채 채무자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보험금을 타 그 중 일부와 브로커가 대신 내준 보험료, 병원비만 치르면 '한몫'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무릎 관절경 수술이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들은 데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웠던 그들에게 장기 병원 생활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보험금을 탄 이들은 빚을 갚기는 커녕 무위도식했고 입·퇴원을 반복하다가 입원 한도가 차면 보험금을 더 타려고 반대편 무릎 및 어깨, 족(足) 관절까지 수술했다.

보험 가입자 중에서 편취금액은 가장 많은 정모(42) 씨는 무려 13개의 보험에 가입해 세 차례 수술을 하고 총 2억1900만원을 타냈다.

정상인 몸에 손을 댔으니 당연히 후유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병을 스스로 자초한 셈이다.

사기에 가담한 이들이 많은 것은 노 씨와 왕 씨의 사기 행태가 소문을 통해 퍼지면서 다단계 형식으로 새끼를 쳤기 때문이다.

사채업자, 지역 폭력배, 유흥업소 업주들이 브로커로 활동하면서 유흥업소 여종업원, 도박자금 채무자들을 보험에 가입시켰다.

또 도박판에서 도박자금을 꿔 주는 일명 '꽁지'들이 채무자들과 공모해 같은 수법으로 보험금을 타내 채권을 회수하거나, 고의 수술로 보험금을 지급받은 전력이 있는 사람이 독자적으로 보험 가입자를 모집해 브로커 역할을 하는가 하면 일반인들이 브로커 없이 단독으로 보험에 가입, 수술 후 보험금을 받아가기도 했다.

특히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 급여를 타려고 앞뒤 가리지 않고 보험가입자들에게 무릎 수술을 해준 모 병원이 있는 순천의 경우 지난해 보험업계 손해율 1위 지역이 될 정도로 보험금을 노린 가짜 환자가 많았다.

지난해 전국 보험업계 손해율(질병) 82.1%를 훨씬 웃도는 101.7%에 달했다가 경찰의 수사가 본격화된 지난 2월 60.3%로 급감했고 전국 손해율 역시 73.4%로 뚝 떨어졌다.

심지어 22개 보험상품에 가입했다가 적발된 사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건강보험 요양급여금을 노리고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되는 정상인을 무턱대고 수술해 준 순천과 김포 지역 의사 3명의 비윤리적 의료 행위도 지탄의 대상이다.

더욱이 구속영장이 신청된 순천 모 종합병원장 A(57) 씨는 지역에서 명망 있는 의사였다는 점에서 의료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그는 자기공명장치(MRI) 판독 결과 정상이지만 무릎 통증을 호소하면 관절경 수술을 해 주고 통상 적정 입원기간이 1~2주에 불과한 관절경 수술 환자를 약 40일간 장기 입원시키고 수술 후유증이 없지만, 퇴원 1주일 후 다시 약 30일 가량 재 입원시켰다.

또 수술 기록지와 진단서, 입·퇴원확인서를 허위로 기재하는 수법으로 요양 급여금을 타 정부의 건강 보험 재정 건전성 확보 노력을 무색케 했다.

경찰 관계자는 "정당한 근로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몸을 손상해가면서까지 돈을 벌겠다는 행태는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크나큰 범죄다"며 "앞으로 이같은 보험사기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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