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부산의 한 고교 2학년 S 양은 인천의 한 대학이 주최하는 ‘전국 고교생 모의국회’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평소 교내 토론동아리에서 말하기 실력을 갈고 닦았던 S 양.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할 절호의 기회란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참여하지 못했다.
고속철도(KTX) 왕복차비 8만5700원에 참가비 11만6000원, 기타비용을 더하면 모두 25만 원이라는 적잖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 또 1박 2일간 그곳에서 머물러야 하다보니 부모님의 허락을 받지 못했다. S 양은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곳에서 주최하는 대회는 보통 수도권에서 열린다”면서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이런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소연했다.
입학사정관제가 대학 입시의 핫이슈로 떠오르면서 지방에 있는 고등학생들은 고충을 토로한다. 입학사정관 전형에 지원할 때 포트폴리오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각종 대회 참가나 체험활동의 장소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참여가 여의치 않다는 것.
대구의 한 고교에 다니는 2학년 J 양은 최근 담임선생님에게 “입학사정관전형은 포기하고 정시에 올인(다걸기)하라”는 말을 들었다. 고3이 되면 교내활동에 참가하지 못할 뿐 아니라 수도권에서 열리는 공신력 있는 대회에 참가하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대입에서 정치외교학과의 입학사정관전형에 지원하기 위해 교내 정치외교동아리에서 활동했고, 1, 2학년 땐 경제 정치 등을 주제로 토론하는 ‘모의유엔’ 대회에도 참가했던 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J 양은 “지원자의 지속적인 활동을 평가하는 입학사정관전형에서 개학 후 3월부터 7월까지 이어지는 공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그렇다고 고3이 별도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서울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동아리 활동이 입학사정관전형에서 중시되면서 충남 천안의 한 남고에는 지난해에만 동아리 10∼15개가 새로 생겼다. 문제는 1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는 동아리가 한두 개에 불과하다는 점. 역사, 정치와 관련한 신설 동아리를 만든 학생들은 각각 ‘국립중앙박물관 견학’ ‘국회의사당 방문’과 같은 활동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해당 장소를 찾아가는 데에만 3시간 가까이 걸리다보니 대부분 흐지부지됐다.
설령 먼 거리를 와 대회에 참가한다 해도 지방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은 계속된다. 평소 방송 프로듀서가 꿈인 울산의 한 고교 2학년 Y 양은 지난해 7월 한국방송예술진흥원에서 주최한 방송캠프에 참여했다. 캠프에서는 12명을 한 팀으로 묶어 뮤직비디오 촬영, 방송 전문가 강의 수강 등이 진행됐다.
팀원 중 서울의 고등학교에 다니는 2명은 자신들이 활동하는 방송동아리에 참여해 함께 영화를 만들면서 동아리 활동 정보를 지속적으로 공유하자고 팀원들에게 제안했다. 그런데 동아리 모임장소는 서울. 지방에 사는 Y 양으로선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매달 서울로 ‘출퇴근’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Y 양은 “입학사정관전형 면접에서 ‘달랑’ 캠프만 참가한 학생과 지속적으로 동아리활동을 한 학생을 비교해 볼 때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지방에 사는 고등학생들의 이런 고민은 많은 경우가 ‘침소봉대’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서울의 한 상위권 대학 입학사정관은 “입학사정관들은 거창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꿈과 구체적으로 연계된 활동을 하면서 어떤 성취가 있었는지에 주목한다”면서 “지방학생들의 경우 꼭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기보다는 교내 대회나 동아리 활동, 지역사회 활동 참여를 통해 더욱 설득력 있는 자신의 비전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낙원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입학지원팀장은 “입학사정관들은 학생들이 처한 환경적 요소를 감안한다”면서 “주어진 환경을 십분 활용해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학생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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