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들의 학내 흡연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들은 향수나 화장품을 사용하거나 각종 도구를 이용해 흡연의 흡적을 없앤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서울의 한 고등학교 2학년 정모 군(17·서울 은평구)은 점심시간이 끝나기 15분 전이면 쓰레기통과 나무로 둘러싸여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학교 내 모처로 향한다. 이른바 ‘식후땡’(식사 후 담배를 피우는 행위를 일컫는 은어)을 하기 위해서다. 삼선슬리퍼 밑창에 구멍을 내어 만든 담배 보관 장소에서 담배를 꺼내 한 개비를 모두 피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분. 수업 재개 전까지 남은 10분 동안 그는 담배 냄새를 지우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정 군은 사물함에서 장미향이 나는 샴푸와 비누, 탈취제, 향수, 구강청정제, 솔잎향이 나는 치약이 들어있는 작은 가방을 꺼낸다. 교사의 출입이 거의 없는 학교 4층 화장실로 가 ‘작업’을 수행한다. 먼저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윗옷을 모두 벗고 강하게 턴 후 탈취제를 뿌린다. 이후 샴푸로 머리를 감고 양치질을 한 뒤 구강청정제를 사용해 입 냄새를 한 번 더 없앤다. 정 군에 따르면 담배 냄새가 가장 심하게 남아있는 곳이 머리카락과 입이기 때문에 이들 부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론 비누로 손을 씻고 레몬향 로션을 바른다.
‘골초’ 중고교생들이 크게 늘고 있다. 한나라당 임해규 의원이 지난달 30일 공개한 교육과학기술부 자료에 따르면 2005∼2008년 전국 800개교 중고생 8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조사 결과 ‘최근 30일 동안 매일 흡연했다’고 고백한 학생이 2005년 3.9%, 2006년 5.3%, 2007년 5.9%, 2008년 6.5%로 해마다 늘었다.
특히 고교생들의 학내 흡연은 심각하다. ‘학업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 당할까봐’ 등 흡연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정당화될 수는 없는 일. 유행처럼 번지는 고교생 흡연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어떤 은밀한 방법을 통해 흡연하고 또 흡연의 흔적을 지우는지 상세히 알 필요가 있다.
○ 흡연의 징후들
점심시간에 격하게 운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덥다는 이유로 갑자기 머리를 감는 학생, 쉬는 시간이 끝나갈 때 즈음 온몸에서 코를 찌를 듯한 강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교실로 들어오는 학생…. 이런 행동들은 모두 흡연 흔적을 지우기 위한 행위일 공산이 크다. 담배 냄새를 없애기 위해 샴푸로 머리를 감고, 향수나 탈취제를 이용하는 것은 흔한 방법에 속한다.
여학생 흡연도 심각하다. 쉬는 시간에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갑작스럽게 화장을 고치고 교실로 돌아오는 여학생도 흡연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경기의 한 여고에 다니는 1학년 이모 양(16·경기 양평군)의 고백에 따르면 이 양은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운 뒤 우선 손과 얼굴에 로션을 고르게 펴 바르고 나서 파우더, 핸드크림, 립밤의 순서로 화장을 한다고 한다. 이 양은 “향이 강한 화장품으로 담배 냄새를 지운다”면서 “특히 살구향이나 딸기향이 강하게 나는 립밤은 입에서 나는 담배 냄새를 지우는 데 많이 사용한다”고 털어놓았다.
체육시간처럼 야외에서 진행되는 수업을 앞두고 흡연을 하는 학생도 있다.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담배를 피우면 교복에 담배 냄새가 밸 염려가 없는 데다가 축구 농구를 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면 독한 담배냄새가 땀 냄새에 묻혀버리기 때문이라고.
○ 흡연 은폐의 방법들
생활지도교사들이 주로 학생들의 손가락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지를 확인해 본다는 사실에 착안해 손가락에 담배 냄새가 배지 않게끔 각종 도구를 사용하는 학생도 있다. 구멍이 뚫린 비닐봉지나 나무젓가락, 장갑을 사용해 담배에 손가락이 직접 닿지 않도록 하는 것. 심지어 커다란 핀셋이나 집게를 사용하기도 한다.
서울의 한 여고 2학년 김모 양(17·서울 서초구). 반에서 10등 안팎의 성적인 김 양은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창문이 열리는 부스를 선점한다. 그리고는 준비해간 똑딱핀에다 담배를 끼운 뒤 똑딱핀 끄트머리를 잡고 피움으로써 손에 냄새가 배지 않도록 한다. 담배를 피우면서 주머니에 넣어간 휴대용 선풍기를 켜서 담배 연기를 창문 밖으로 얼른 날린다. 흡연 후엔 매운 맛이 나는 껌을 씹고, 강한 향이 묻어있는 껌 종이로 손가락 마디마디를 닦아낸다.
김 양은 “화장지를 ‘U’ 모양으로 단단히 말아 ‘집게’로 만든 뒤 이걸로 담배를 집어 피우는 여학생들도 있다”면서 “1cm 길이의 인조손톱을 붙인 채 담배를 피우고는 손톱을 떼어내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학교 내 특정장소에 이런 물건들이 많이 버려져 있다면 학생들이 담배를 많이 피우는 ‘아지트’일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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