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4人, 연휴도 없이 문화재를 지킨다

동아일보 입력 2010-09-21 03:00수정 2010-09-2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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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연휴 숭례문 악몽 다신 없어야죠”… 문지기 4人
2년 전 설 연휴 마지막 날 일어난 숭례문 방화 사건의 악몽을 지우기 위해 추석 연휴에도 흥인지문, 창의문, 혜화문, 광희문 등 서울 시내 4개 문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창의문지킴이 이효근 씨와 혜화문 관리자인 김영수 씨가 창의문 앞에서 만나 주변을 점검하고 있다.(왼쪽 사진 왼쪽부터). 흥인지문 지킴이 염원표 씨(오른쪽 사진 왼쪽)와 광희문 담당 김광웅 씨가 흥인지문 앞에서 만나 점검 대상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2008년 2월 10일에 일어난 숭례문(국보 1호) 방화 사건. 연기 한 자락으로 시작된 화재는 평온한 세상을 순식간에 헝클어 놓았다. 벌써 2년 7개월 전 일이다.

그날을 계기로 서울시는 시내 23개 주요 문화재에 전담 경비 인력을 두기 시작했다. 이른바 ‘문화재 전담 경비 인력 배치 사업’이다. 그중 핵심은 흥인지문, 창의문, 혜화문, 광희문 등 서울 시내 4개문(門) 지키기. 문화재 전담 경비 인력 133명 중 35명이 4개 문을 밤낮으로 지키고 있다. 노인 일자리 창출 개념으로 시도된 사업이어서 경비인력은 모두 55세 이상 고령자다.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도 이들은 휴일을 반납했다. 사무소로 출근해 ‘송편’ 대신 ‘도시락’을 먹어야 한다. 그래도 이들은 “2년 전 악몽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각자의 장소에서 문을 지키는 4명의 문 지킴이를 현장에서 만나봤다.

○ 가족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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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마지막 날 그렇게 (숭례문이) 불탈 거라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어요. 남들 놀 때 더 경계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해요.”

종로구 청운동 창의문과 혜화동 혜화문을 각각 지키는 이효근 씨(65)와 김영수 씨(65)는 공통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1945년 해방둥이로 각각 종로경찰서 방범대원, 종로구청 6급 공무원 등 전직 공무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문 지킴이로 퇴직 후 찾아온 우울증을 극복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

“4개 문 대부분에는 폐쇄회로(CC)TV가 여러 대 있지만 보안 시스템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우리의 손길이 필요하죠. 수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만큼 우발적인 사건들을 우리가 직접 막아야 합니다.”

이들의 근무는 오전 6시부터 오후 2시, 오후 2시부터 10시,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 등 하루 3개 조로 나뉜다. 하루 8시간씩 3일간 일하고 하루를 쉰다. 이 씨는 추석 연휴 3일 모두 밤 근무, 김 씨는 낮 근무가 잡혀 있다. 단순히 화재 예방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심폐소생술도 해야 한다. 외국인들에게 관광 가이드 역할도 한다. 수당은 주간 3만8000원, 야간 5만7000원이다.

가족 얘기가 나오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전남 강진이 고향인 이 씨는 “TV로 귀성차량을 볼 때면 부모님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서울이 고향인 김 씨는 “아내가 ‘이제 그만 나가라’고 걱정을 한다”면서도 “내가 걱정하는, 나를 걱정해주는 가족들이 있어 힘이 난다”고 웃었다.

○ 사명감이 있어

올 1월부터 흥인지문을 지키고 있는 염원표 씨(64)는 14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충남 금산에 있는 부모님 묘소에 성묘를 다녀왔다. 이번 추석 연휴기간에도 평소처럼 순찰을 돌고 감시 카메라 렌즈를 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흥인지문 내부와 주변 청소를 하는 것도 그의 몫. 염 씨는 묘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추석 당일에 못 찾아뵈어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결혼해 따로 살고 있는 염 씨의 두 딸은 염 씨가 근무를 교대하고 집에서 쉬는 시간에 맞춰 아버지를 만나러 온다. 그나마 딸들이 서울에서 살고 있어서 잠깐이라도 볼 수 있는 것이 다행이다.

흥인지문은 인근에 대형 시장이 있어 유동인구가 많기 때문에 별일이 다 일어난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햇볕을 피한다며 금줄 안쪽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경보가 울리는 것은 예삿일. 염 씨는 “여름에는 밤새 문 옆 잔디에서 술을 마시고 술병을 깨뜨리거나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어 매 순간 이곳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부터 광희문을 지키고 있는 김광웅 씨(66)도 추석 전날 오후 11시부터 추석 당일 오전까지 야간 근무가 잡혀 있다. 김 씨는 “몸은 힘들지만 밤이 되면 광희문을 밝히는 조명이 아름다운 누각을 비출 때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견딘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 “나라의 소중한 문화재를 지킨다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나 할 수 없고요. 사명감을 갖고 일터에 나오다 보면 명절 연휴, 안 쉬어도 저절로 힘이 납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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