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 이제 곧 방학… ‘오빠들 스케줄’ 따라 움직여라!

  • 동아일보

여중생 김모 양(13·서울 관악구). 그는 인기 그룹 ‘빅뱅’의 팬클럽 ‘VIP’ 3기 회원이다. 7월 초 기말고사를 치른 김 양. 시험공부를 하는 동안 교과서를 보든 공책을 보든 김 양의 눈에는 빅뱅의 멤버인 ‘태양’이 아른거렸다.

“태양 오빠가 이번에 정규 솔로앨범 냈잖아요. 저번 주 금요일에 지용(빅뱅의 리더 ‘G드래곤’의 본명) 오빠랑 같이 가요프로그램 ‘사녹’(‘사전녹화’의 줄임말)했는데 그놈의 시험 때문에 가지도 못하고. 진짜 눈물났다니까요. 팬 사이트에서 편집된 동영상을 보며 마음을 달랬어요.”

김 양은 시험이 끝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시험 마지막 날인 8일 오전 11시 45분. 학교 종례를 마치자마자 김 양은 아이돌 그룹 ‘엠블랙’의 팬인 친구와 함께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한 가요프로그램 녹화 스튜디오로 달려갔다.

“오늘 무대에서 춤추던 태양 오빠랑 눈이 마주쳤어요. 시험도 끝났는데 이제 사녹이든 ‘공방’(‘공개방송’의 줄임말)이든 되는 대로 다 뛰어야죠!”

이른바 아이돌 그룹 춘추전국시대. 짐승돌이나 걸 그룹들이 가요계를 종횡무진하는 요즘, 팬들의 활동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특히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을 앞둔 이때는 전국의 소녀 팬들이 본격적으로 팬 활동에 돌입하는 시기다. ‘학습 모드’에서 ‘팬질 모드’로 180도 바뀌는 것(‘팬질’은 ‘적극적인 팬 활동’을 일컫는 신조어다). 가요 프로그램 방청석에서 열렬히 응원하는 건 기본, 소속사 앞에서 오빠들을 기다리는 건 옵션이다. 다음은 9인조 그룹 ‘제국의아이들’ 열혈 팬인 여중생 이모 양(14·경기 군포시)의 말.

“시험 땐 엄마 눈치 보여서 인터넷을 거의 못했어요. 급한 마음에 일단 인터넷 팬 카페에서 알게 된 친구한테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냈어요. ‘오빠들 홈페이지에 업데이트 된 사진들을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내 휴대전화로 전송해 달라’고 부탁했죠. 손바닥만 한 크기의 사진을 보려니 어찌나 답답하던지, 오빠들 실물이 너무너무 보고 싶은 거예요. 시험 끝나고 바로 소속사로 달려갔어요. 4시간 기다리다 결국 못 봤지만요.”

열혈 팬들은 여름방학 계획도 ‘오빠들’의 스케줄에 따라 세운다. 일부 팬은 특별한 방학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룹 ‘비스트’의 팬 카페에서 ‘쇠고기요섭’이란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신모 양(15·경기 수원시)은 24일 서울시내 번화가에서 거리홍보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 멤버들의 사진을 붙인 투표판을 거리에 세워 놓고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스킨십을 가장 좋아할 것 같은 사람은?’ 같은 설문조사를 할 예정. 8월에 있는 비스트 데뷔 300일 선물로 쓸 롤링페이퍼 글귀도 받기로 했다. 목표는 100명이다.

신 양은 “시험 마지막 날인 4일에도 서울 명동 거리에서 비스트 멤버 윤두준의 생일 기념 거리홍보를 진행했지만 다들 시험 기간과 겹쳐 준비가 부족했다”면서 “이젠 곧 방학이라 팬 카페서 만난 지방 친구들까지 주말에 올라와 24일 이벤트를 함께 준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럼 팬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자금은 어떻게 마련할까?

제국의아이들 팬인 전모 양(14·서울 동대문구)은 한 달 용돈이 4만 원이다. 다가오는 ‘제아(제국의아이들) 데뷔 200일’에 대비해 팬 카페 친구 8명과 함께 글귀를 새긴 수건을 제작하기로 했다. 다른 선물 구입비용까지 고려해 한 사람당 2만 원을 걷는다. 이는 전 양 한 달 용돈의 50%에 달하는 액수.


전 양은 자금 조달을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다. 설거지, 빨래 등 집안일을 하면 엄마에게 2000∼5000원의 용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험이 끝난 이후 꾸준히 집안일을 돕고 있어요. 힘들지 않느냐고요? 오빠들이 샤워하고 나서 저희가 준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다가 수건 위 글귀를 읽을 모습을 상상하면 오히려 신나죠(웃음).”

장재원 기자 jjw@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