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스펠링 비가 가장 부지런히 하는 것은?… 어원 ‘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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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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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토크로미아, 젠토-크로미아, 단어의 어원이 그리스어인가요?”(참가자)
“네, 그리스어입니다.”(출제자)
“‘젠토’라는 단어가 그리스어로 노란색, 황색을 의미하는 그 ‘젠토’인가요?”(참가자)
“맞습니다.”(출제자)
“젠토크로미아…. 스펠링은 x, a, n, t, h, o, c, h, r, o, m, i, a, 젠토크로미아입니다.”(참가자)
3일 오후 3시(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의 그랜드하이엇호텔에서 열린 제83회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 비(Scripps National Spelling Bee·SNSB·영어단어 철자 맞히기 대회) 세 번째 라운드. 한국 대표로 출전한 김현수 양(14·대원국제중 2)이 전문용어 ‘xanthochromia(황색변조증)’의 철자를 어원을 따져가며 또박또박 말하자 관중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참가번호 151번 미국 뉴멕시코 주 출신의 해나 에번스 양(14)이 무대에 올랐다. 출제자인 자크 베일리 박사(미국 버몬트대 고전학 교수)가 ‘phantasmagoric(환영 같은, 주마등 같이 변하는)’을 출제하자 에번스 양이 곧바로 단어의 정의를 물었다. 베일리 박사의 설명을 듣는 순간 얼굴에 미소를 띤 에번스 양. 총 14자나 되는 스펠링을 속사포처럼 말했다. 정답! 함박웃음을 지으며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순서를 기다리는 친구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정확한 스펠링을 맞힌 학생에겐 칭찬의 박수가, 아깝게 틀린 참가자에겐 더 큰 격려의 박수가 터지는 이곳은 세계적 영어대회인 SNSB 현장이다. 미국 전역은 물론 뉴질랜드, 자메이카, 캐나다, 일본, 중국 등 각국에서 참가한 스펠러(speller·스펠링 비 대회 참가자를 이르는 말)에겐 축제의 현장이기도 하다. 정확한 스펠링을 맞히기 위해 힌트를 되풀이해 물어보고, 발음을 두세 번 반복해 따라하는 것은 물론 팔뚝과 손바닥에 쓰면서까지 머리를 짜내는 참가자들의 모습은 순수하고 열정적이다. 한국 스펠링 비 대회 후원을 맡은 윤선생영어교실 박준서 상무는 “대회를 통해 스펠링을 외우는 것은 물론 영어권 국가의 문화를 배우고, 참가자 모두가 승패를 떠나 함께 어울리는 축제의 자리”라고 말했다.

최고의 스펠러를 꿈꾸는 이들은 어떻게 스펠링 공부를 했을까. 수십,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세계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과, 출제자인 베일리 박사에게 효과적인 스펠링 학습법을 들어봤다. 베일리 박사는 이 대회 1980년 챔피언이다.


○ 퀴즈 풀듯 가족과 함께 외우며 하루 2시간씩 스펠링 공부!


버진아일랜드에서 온 카미 토머스 군(11)은 대회에 부모와 할머니, 지도교사까지 총출동했다. 이들은 모두 토머스 군의 스펠링 학습에 도움을 줬다. 토머스 군은 “매일 하루 2∼3시간씩 스펠링을 공부하는데 정말 재미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는 스펠링 비 공식 웹 사이트(www.spellingbee.com)에 접속한다. 사이트에 올라온 어려운 기출단어를 찾아 외운 뒤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낸 퀴즈를 맞힌다. 이때 모르는 단어는 사전에서 뜻과 어원, 단어가 사용된 예문을 찾아 노트에 적는다. 토머스 군의 아버지 마이클 토마스 씨는 “게임을 하는 것처럼 문제를 내고, 맞히면 칭찬해주었더니 카미가 점점 스펠링 공부에 빠져들었다”면서 “‘gesundheit’(재채기를 한 사람에게 하는 말로 ‘몸조심하세요’라는 뜻)라는 단어처럼 까다로운 단어도 한번 외우면 가족들이 한 번씩 써보면서 자연스럽게 스펠링과 친해졌다”고 말했다.

베일리 박사도 스펠링을 재미있게 공부하는 것을 추천했다. 한국 학생들이 영어 단어 외우는 것을 지겹고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단어를 받아쓰기 등 시험으로만 여기기 때문.

베일리 박사는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 자동차, 로봇 등의 이름을 사전에서 찾아보는 방식으로 처음 스펠링을 공부하면 아이들이 재밌게 느낀다”면서 “친구나 가족과 함께 대회처럼 토너먼트 방식으로 단어를 맞히는 방식도 좋다”고 말했다.
○ 어원 하나로 단어 100개를 꿸 수 있다!

단어의 어원을 통해 뜻을 유추하거나 단어의 형성과정을 분석하며 공부하는 것도 매우 효과적인 스펠링 학습법이다.

김현수 양은 “평소에 어원에 따라 형성되는 단어의 규칙을 찾으면서 공부했다”고 말했다. 영어의 85%가 프랑스어, 그리스어, 독일어, 라틴어 등에서 유래됐기 때문에 단어의 뿌리인 어원을 알면 어원이 단어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양이 세 번째 라운드에서 ‘xanthochromia’의 어원이 그리스어라는 힌트를 얻고 바로 답을 맞힌 것이 바로 어원학습법이 통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베일리 박사는 “어원으로 공부하는 것은 최고의 스펠링 학습법”이라고 말했다.


○ 책 읽으며 마트에서도…자연스럽게 스펠링 달인!


미국 아칸소 주 대표로 출전한 한국계 미국인 에스더 박 양(14)은 평소 책을 읽으면서 스펠링을 익혔다. 2년 연속 주 대표로 출전한 박 양은 재미있는 영어책이 있으면 수십 번 반복해 읽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읽었던 책 ‘A Series of Unfortunate Events’(레모니 스니켓 저)는 불행으로 몰아가는 악당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로 비교적 어려운 단어가 많이 등장했다. 하지만 박 양은 사전을 찾지 않았다. 대신 여러 번 읽으면서 문맥을 통해 단어의 뜻을 유추했다.

박 양은 슈퍼마켓이나 식료품점에서도 스펠링 공부를 한다. 그는 “와인 병이나 치즈 포장지에 적힌 생소한 단어나 스펠링이 희한한 단어를 보면 꼭 적어 와서 사전을 찾는다”면서 “이렇게 외웠던 프랑스어원인 단어가 이번 대회에도 몇 개나 출제됐다”고 말했다.

워싱턴=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최고의 ‘스펠러’를 가르는 세계적 영어대회인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 비(SNSB)’가 2∼5일 미국 워싱턴 그랜드하이엇호텔에서 열렸다. 올해 SNSB 챔피언이 된 인도계 미국인 아나미카 베라마니 양(14)은 “일곱 살 때부터 스펠링을 공부했는데 스펠링을 공부하니 철자뿐 아니라 단어의 배경, 의미, 개념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고의 ‘스펠러’를 가르는 세계적 영어대회인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 비(SNSB)’가 2∼5일 미국 워싱턴 그랜드하이엇호텔에서 열렸다. 올해 SNSB 챔피언이 된 인도계 미국인 아나미카 베라마니 양(14)은 “일곱 살 때부터 스펠링을 공부했는데 스펠링을 공부하니 철자뿐 아니라 단어의 배경, 의미, 개념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 비(Scripps National Spelling Bee)란?

올해 한국 대표로 선발돼 선전한 김현수 양(14·대원국제중 2).
올해 한국 대표로 선발돼 선전한 김현수 양(14·대원국제중 2).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EW 스크립스 사가 주최한다. 단어의 철자를 한 자씩 발음해 맞히는 세계적 규모의 영어대회다. 한국 대표를 선발하는 대회는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가 주최하고 영어교육 전문기업인 윤선생영어교실의 후원으로 매년 서울에서 열린다. 지역 또는 국가 대표로 뽑힌 초중학생이 미국 워싱턴에 모여 우승자를 가린다. 지필, 구두시험 점수로 준결승 진출자를 결정하며 준결승전부터는 토너먼트로 진행한다. 결승전은 미국 ABC방송을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된다. 올해는 10개국 273명의 스펠러가 모여 경합을 벌인 끝에 미국 오하이오 주 출신의 아나미카 베라마니 양(14)이 ‘stromuhr’를 맞혀 챔피언이 됐다. 베라마니 양은 “대회를 준비하면서 독일어 어원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도움이 됐다”면서 “준결승에서 출제됐던 모르는 단어도 소리(파닉스)와 스펠링의 관계를 이용해서 유추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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