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규인]고개 숙일줄 모르는 서울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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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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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고 편법 입학 파장
교육청, 학생-학부모 탓만

“선의의 학생도 피해를 볼 수 있다. 우리부터 조심해야 한다.”

평소 ‘전쟁같은’ 취재경쟁을 벌이는 기자들 사이에 이례적으로 ‘평화협정’ 분위기가 조성됐다. 최종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개별 사례는 보도하지 않도록 ‘엠바고’를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지역 자율형사립고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에 편법 입학한 학생이 있다는 의혹이 불거진 22일 서울시교육청 출입 기자들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자제의 분위기는 다음 날 깨졌다. “한 실무자가 자기 책임을 떠넘기려고 정보를 흘리고 다닌다”는 말이 퍼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구체적인 사례가 흘러 다녔다. 서울시교육청의 담당 직원이 ‘우리 잘못이 아니라 학부모들이 너무 심했다’고 둘러대려고 ‘작전’을 펼친다는 말도 들렸다.

우려대로 학교장 추천으로 자율고에 합격한 학생들은 이후 도매금으로 매도당했고 학부모와 학생의 불안감도 덩달아 커졌다. 담당 부서는 “조사 중이라 아무것도 알려 줄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지만 상처받는 학생들의 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늘었다.

시교육청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한 26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담당 과장이 발표한다는 사실에 기자들이 반발하자 뒤늦게 담당 국장으로 바뀌었다. 국장은 곧바로 사무적인 말투로 보도자료를 읽었다. 그가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꺼낸 건 기자들이 “먼저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은 다음이었다. 하지만 국장은 “제도 시행 초기라 (학부모들이)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예견하기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변명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이) ‘개구멍’이 될 것”이라는 말이 돌았는데 교육당국만 몰랐다는 얘기다.

시교육청은 학생 학부모를 적(敵)으로 간주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담당 국장은 한 법무법인에서 받았다는 자문서를 들어 보이며 “재판을 하면 우리가 이길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남한테 도둑질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듣고 도둑질을 했다. 그렇다고 그 사람 죄가 없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물론 합격이 취소된 모든 학생이 ‘선의의 피해자’는 아니다. 그러나 시교육청은 이번 사태에 대해 ‘아이들에게 이런 일이 생겨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먼저 고개 숙일 기회는 영영 잃었다.

변명이 대부분이던 담당 국장의 브리핑은 “국장님께서 바쁜 일이 있으셔서 브리핑을 마치겠다”는 한 직원의 말과 함께 40분 만에 끝났다.

황규인 교육복지부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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