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엄동에 단칸방서 재워줬건만…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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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원 안빌려줘…” 숙식 제공한 母子 살해

9일 오후 3시 서울 영등포구 신길5동 반지하 단칸방에서 모자(母子)의 시신이 발견됐다. 6년 전 음주교통사고로 택시운전사 일을 그만둔 뒤 가족과 별거하고 일용직을 전전하던 최모 씨(54)와 그의 어머니 장모 씨(91)였다. 두 사람은 각각 과일칼과 가위로 목과 이마 등을 찔린 채 피투성이로 방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그 위에는 한 장의 이불이 덮여 있었다. 시신 옆에는 깨진 소주병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12일 단칸방 모자의 살해 용의자로 이들과 함께 지내던 일용직 근로자 강모 씨(46)를 붙잡아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7일 오후 10시 반경 단칸방에서 최 씨와 술을 마시다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자 최 씨를 칼로 찌르고, 이를 말리던 노모 장 씨를 가위로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경찰에 따르면 강 씨는 성인 3명이 눕기에 빠듯한 10m²(약 3평) 남짓한 최 씨 모자의 집에서 5개월 동안 숙식을 해결해 왔다. 3년 전 여름 어느 날 영등포구 문래동의 어느 다리 밑에서 더위를 피하다 만난 최 씨와 강 씨는 서로의 어려운 사정을 토로하면서 금세 친해졌다. 최 씨는 당시 노숙인이었던 강 씨를 종종 자신의 단칸방에 초청했고 잠을 재워주기도 했다. 지난해 가을부터는 “날이 추워지니 아예 들어와서 지내라”며 방 한쪽 구석을 내줬다.

7일 밤도 여느 때처럼 둘은 함께 자리를 했다. 술을 마시다 강 씨는 “예전에 더 넓은 집으로 옮겨가 함께 살 방안을 궁리해 볼 테니 100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왜 안 줬느냐”며 서운한 마음을 나타냈고, 거기서부터 둘 사이에 사소한 말다툼이 생겼다. 최 씨는 홧김에 소주병을 집어던졌고 이에 격분한 강 씨가 칼을 집어 들면서 비극이 벌어졌다.

경찰에 붙잡힌 강 씨는 순순히 범행을 털어놨다. 그는 “월세 명목으로 모자에게 매달 10만 원을 줬지만 최 씨는 늘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고 노모는 나에게 밥을 조금만 줬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곧바로 “술김에 그랬고 노모를 죽일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면서 고개를 숙이며 흐느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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