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건설노동자 취업 등록제’ 8개월… 새벽 인력시장 가보니

  • Array
  • 입력 2010년 1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무자격 단속강화… 한국인 수요 늘었어요”

4일 오전 6시경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지하철 남구로역 5번 출구 앞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이 버려진 종이박스로 불을 피워 언 손을 녹이고 있다. 노동자 조종수 씨는 휴대전화에 저장한 딸의 사진을 보여주며 “새해 소망은 일거리가 늘어 1000만 원 이상 저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4일 오전 6시경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지하철 남구로역 5번 출구 앞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이 버려진 종이박스로 불을 피워 언 손을 녹이고 있다. 노동자 조종수 씨는 휴대전화에 저장한 딸의 사진을 보여주며 “새해 소망은 일거리가 늘어 1000만 원 이상 저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4일 오전 6시경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인력시장. 눈발이 쏟아지는 가운데 지하철 남구로역 5번 출구 앞 인도에 새해 벽두부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한국인 일용직 건설노동자 9명이 모였다.

“중국동포들이 싼 임금으로 일하겠다고 나서니 건설현장의 일당이 10년째 안 오르잖아요. 인력사무소에서 떼어가는 소개비 10%도 너무 많은데….”

길가에 버려진 박스 등을 모아 불을 피우고 손을 녹이던 조종수 씨(51)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중국동포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아홉 살 난 딸을 둔 조 씨는 동료들에게 “중국동포는 바짝 돈을 벌어 돌아가려고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 학원도 보내야 한다”며 “한국 사람들이 먼저 잘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래도 정부가 단속을 시작한 뒤에는 한국인을 많이 찾는 것 같은데?”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이모 씨(49)가 말했다. 가리봉동에서 태어난 이 씨는 15년 동안 건설현장에서 번 돈을 모아 경기 광명시 하안동에 중국 음식점을 차려 5년간 운영했지만 장사가 안 돼 지난해 가게를 정리했다. 4개월 전부터 다시 막노동을 시작한 이 씨는 “정부가 취업등록제를 시행한 뒤 한 달에 5일 정도는 일거리가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국인 일자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중국동포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해 5월부터 ‘외국인근로자 건설업 취업 등록제’를 실시했다. 건설업계에서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중국동포 근로자를 8만 명 이상으로 추산한다. 현재까지 중국동포 6만4427명이 등록했으며 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 단속에 나서 등록하지 않고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중국동포에게 체류기간 연장 불허 등 법적 불이익을 주고 있다. 노동부는 2010년 건설업계에서 일할 적정 동포 수를 6만4900여 명으로 보고 있다.

4일 오전 5시경 가리봉동 S인력사무소에 나온 중국동포 6명이 종종걸음으로 컴컴한 길을 지나 승합차에 올라탔다. 마포 건설현장의 청소 일자리를 구한 중국동포 김모 씨(50)는 자신은 등록증이 있다고 했다. 김 씨의 고향은 중국 헤이룽장 성 하얼빈이다.

“한 달에 20일 정도 일을 해요. 인력사무소 수수료를 떼고 일당 6만3000원 정도를 받습니다. 서울 종각역 근처 칼국수 집에서 일하는 아내가 버는 돈과 합쳐 매달 100만 원 이상 중국에 송금해요.”

지난해 4월 입국했다는 김 씨는 중국 내 대학 1학년인 아들 등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 방문취업 비자를 받고 한국에 입국해 2009년 3월 30일 이전에 취업교육을 받은 사람들만 건설현장 취업 등록이 가능하기 때문에 ‘등록증이 있다’는 김 씨의 말은 신빙성이 없었다. 지난해 12월 입국해 등록증이 없는 최모 씨(34)도 이날 일감을 잡았다. 등록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제도 시행 뒤 인력사무소에는 한국인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늘었지만 중국동포를 소개하는 사례가 많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M인력사무소 직원은 “고돼 한국인 근로자가 기피하는 일도 중국동포는 선뜻 나선다”며 “한국인 근로자가 일당 10만 원 받는 작업을 중국동포는 8만 원만 받고 한다”고 말했다.

중국동포들은 고용지원센터와 자율 구직을 통한 취업만 가능하고 유료 직업소개소를 통한 취업은 허용되지 않지만 건설 일용직 동포 노동자들은 대부분 인력사무소에서 일감을 구하고 있다. S인력사무소 직원은 “제도가 현실과 맞지 않다”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도 “건설현장 일자리 정보를 개인이 직접 파악하도록 하는 것은 무리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