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걸리면 한국사람만 죽는다?

  • 입력 2009년 9월 30일 15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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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 출국장의 신종 플루 관련 안내문. '고열, 콧물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병원에 가 봐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싱가포르=나성엽 기자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 출국장의 신종 플루 관련 안내문. '고열, 콧물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병원에 가 봐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싱가포르=나성엽 기자
26일 오전 7시 인천 국제공항 출국장.

이른 시각이었지만 비행 일정에 따라 각 카운터에는 발권을 하려는 승객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캐주얼, 정장 차림 등 승객들의 옷차림은 각각 달랐으나 눈에 띄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람이 없었다는 것.

최근 국내에서 신종플루 확진환자가 1만5000명을 넘어섰으며 이중 11명이 사망해 신종플루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하고 있지만, 출국장 K 카운터 부근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은 안내 데스크의 여직원 두 명이 전부였다.

출국심사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출국심사를 하는 공항 직원들은 물론 여행객들 중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자가 탄 비행기는 싱가포르 항공 SQ603편.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포뮬러 원 그랑프리 취재차 오른 기내에서도 평상시와 다른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여성 한국인 한명이 유일하게 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나 그는 "감기에 걸렸는데 다른 승객들에게 옮길까봐 마스크를 착용했다"고 설명했다.

6시간여의 비행 끝에 도착한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 싱가포르도 신종플루로 인해 8월 말까지 한국보다 많은 18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입국장에서 열을 재는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오가는 비행기 속에서도 과거 조류독감이 유행했을 때처럼 승객들에게 검역서를 작성하게 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싱가포르 시내는 물론 호텔에서도 신종플루에 대한 공포감은 느낄 수 없었으며 특히 27일 오후 8시(현지시간) 열린 F1 그랑프리 경기장의 3만여 좌석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싱가포르인과 외국인 F1 팬들로 꽉 들어찼다.

"'걸리면 죽는다'는 신종플루에 외국인이나 싱가포르인들은 너무 무관심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현지 주재원들은 "건강이 안 좋은 일부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신종플루가 아니라 일반 독감이어도 마찬가지라는 게 잘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업무상 해외출장이 잦은 브리지스톤 코리아의 송진우 차장(39)은 "싱가포르 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등에서도 신종플루에 대한 공포감은 느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외출을 자제 하거나,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고 마스크를 쓰는 등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

국내 의사들도 "독감에 걸리면 좋지 않듯이, 신종플루를 예방하는 것은 좋지만 공포심까지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경기도의 한 거점 병원에서 진료 중인 강모 박사(38·내과)는 "신종플루 의심환자를 진료할 때는 의사들도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며 일부 의사들만 확진환자를 진료할 때 마스크를 착용한다"고 말했다.

강 박사는 "신종플루는 결국 또 다른 종류의 독감일 뿐이며, 평소 독감을 조심해야 하는 사람들이 신종플루를 조심하면 된다"고 말했다.

특히 신종플루 확진 환자나, 신종플루에 걸렸다가 회복된 사람을 피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감기환자를 모두 왕따시키는 것과 다름없다"며 "신종플루에 걸린 사람이나, 주위에 신종플루 환자가 있는 사람 모두 보다 성숙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천·싱가포르=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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