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급 턴키공사 심의, 3000명 풀制폐지… 상설위원 70명으로 축소 추진

  • 입력 2009년 6월 26일 02시 52분


아낌없이 돈 뿌려… 우리편으로 엮고… 성향따라 맞춤 향응
‘아우성 로비’ 줄어들까

■ 내년 1월 도입땐?
정부 “재산공개-윤리 강화”

업계 “소수에 로비 더 집중”
■ 지금은 복마전!
건설사, 위원 모두 상시관리
거액금품-억대 연구용역도

《“평가위원으로 뽑힐 확률이 높은 사람의 집 앞에 전날 밤부터 차를 대기시켜요. 다음 날 아침에 평가위원으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으면 심의장소까지 차로 모십니다. 차 안에서 우리 회사에 점수를 높게, 유력 경쟁사에는 낮게 주는 조건으로 현금, 연구용역 조건 등을 협상하죠. 낙찰이 안 돼도 약속은 지킵니다. 평가위원들 사이에서 ‘그 건설사, 신의가 없더라’는 소문이 돌면 끝장이니까요.”(A건설사 관계자)

“술, 여자, 돈 중 뭘 좋아하는지 취향을 파악하는 건 기본이에요. 사는 집을 공짜로 리모델링해 주거나 부모 생일잔치 비용, 해외 세미나 경비를 지원하기도 하고 세미나 장소도 마련해 줍니다.”(B건설사 관계자)》

건설사들이 정부가 발주하는 공공부문 턴키(일괄입찰) 방식 공사를 따내기 위해 벌이는 로비의 단면들이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한데 묶어 일감을 맡기는 턴키 공사는 대부분 규모가 1000억 원이 넘고 이윤도 높다. 건설사로선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건축·토목 관련 교수, 연구원 등 3000여 명의 전문가 풀(Pool)에서 공사별로 10∼15명의 평가위원을 뽑아 업체 선정을 맡겼다.

하지만 이런 심사 시스템이 오히려 건설업계의 비리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자 국토해양부는 내년 1월부터 전문가 풀을 없애고 평가위원을 최저 70여 명 선으로 크게 줄이기로 했다. 공공 공사 로비전에도 일대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 007 작전 방불케 하는 사전 탐문

턴키 평가위원은 심사 전날 밤이나 당일 아침에 통보하기 때문에 누가 어떤 공사를 심의할지 당사자도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대형 건설사는 3000여 명 전원을, 중견 건설사는 1000명 또는 그 이하를 ‘상시 관리’하는 게 통례였다. 설계비 등으로 전체 공사비의 3%가량을 미리 쓰기 때문에 수주를 못하면 지출한 돈을 고스란히 날리게 된다. 업체로서는 절박할 수밖에 없다.

C건설사 관계자는 “처음부터 돈을 달라는 사람이 차라리 편하다”며 “자신의 지인이 운영하는 업체에 일감을 주라고 하는 등 감당하기 힘든 요구를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평가위원으로 누가 선정될지 미리 알아내기 위해 발주처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지연 학연 혈연 등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하는 것은 기본이다. 거부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 과정에서 거액의 금품이 건네지기도 한다. 실제 2006년 서울 송파구 장지동 동남권유통단지 턴키 공사 심의 때는 대형 건설사들이 평가위원들에게 각각 현금 3000만 원, 5000만 원 등을 주고 1억2000만 원의 연구용역 등을 제공한 사실이 지난해 초 검찰에 적발됐다.

○ “로비는 더 치열해질 것”

건설사들은 현행 제도가 너무 소모적이라고 호소한다. 공사 현장소장들 사이에서는 발주처 관리에 공을 들이느라 본업인 현장업무에 집중하기 힘들다는 푸념도 나온다. 평가 결과에 대한 불신도 크다. D건설사 측은 “아침 일찍 심의장소에 가 있으면 평가위원들이 어느 건설사가 제공한 차를 타고 오는지 알 수 있다. 이른바 ‘손잡고’ 온 위원이 제일 많은 건설사가 공사를 따면 실력으로 수주했다고 인정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지금과 같은 로비 방식은 문제가 생기면 해결 비용도 만만찮다. 한 건설사는 몇 년 전 금품제공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된 직원이 승소할 수 있도록 막 개업한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를 선임했다. 공식 수임료는 1억5000만 원이지만 변호사가 비공식적으로 5억 원을 더 요구해 지불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회사가 끝까지 책임지고 봐주지 않으면 어느 직원이 몸을 던지겠느냐”고 말했다.

국토부는 앞으로 평가위원 명단을 공개해 일정 기간 심의를 맡기는 한편 재산을 공개하는 등 윤리규정을 엄격히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중앙상설심의위원 70여 명이 전체 공사를 심의하는 방안과 함께 중앙심의위원 70여 명 및 광역자치단체별 심의위원 30∼50명이 발주처에 따라 각기 심의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건설사들의 반응은 아직 회의적이다. E건설사 관계자는 “평가위원이 누군지 모두가 알게 되면 심사가 투명해질 수 있겠지만 오히려 소수를 대상으로 훨씬 집요한 로비가 펼쳐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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