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평준화 특목고’ 만든다고 사교육 없어지나

  • 입력 2009년 5월 20일 02시 58분


정부 여당이 그제 확정한 특수목적고 입시 개선안은 사교육 억제는커녕 새로운 부작용을 예고하고 있다. 새 입시안은 2010학년도부터 외국어고의 필기 전형을 폐지하고 2011학년도부터는 과학고의 경시대회 입상자 특별 전형을 없애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목고 지원자들이 필기 전형과 경시대회를 준비하면서 사교육비를 많이 지출하고 있다고 보고 규제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필기 전형이 금지되면 외국어고는 중학교 때 내신 성적을 기준으로 신입생을 뽑을 수밖에 없다. 내신 시험은 단답식 출제가 많아 과외를 통해 성적을 올리는 효과가 뚜렷하다. 특목고 입시경쟁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내신 과외가 성행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권이 대학에 내신 입시를 강요한 결과 연간 사교육비 규모가 2003년 13조 원에서 2007년 20조 원으로 크게 늘었다. 정부가 특목고 입시에서 똑같은 전철을 밟으려는 것은 어리석다.

중학교도 고교와 마찬가지로 지역별 학력 격차가 크다. 2009학년도 서울 6개 외국어고 입학생 통계를 보면 양천구 출신이 전체 합격생의 12.2%, 강남구 출신이 12.1%를 차지한 반면 금천구는 0.3%, 중구는 0.4%를 배출하는 데 그쳤다. 상위 지역이 하위 지역보다 20배 이상 많은 합격생을 냈다. 내신 입시가 되면 공부를 더 잘하는데도 불합격되는 역차별 현상이 벌어진다. 경직된 내신 입시로는 외국어에 특출한 재능을 지닌 지원자를 뽑기도 어렵다. 평준화 정책을 보완하기 위한 외국어고의 설립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이다.

새 입시안은 과학고 입시에서 입학사정관 전형을 확대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으나 여기에 대응해 사교육 시장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조짐이 보인다. 입학사정관의 눈에 들려면 장기간에 걸친 맞춤식 지도가 이뤄져야 하므로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 경시대회는 과학영재를 조기 발굴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는 데도 경시대회 특별전형을 완전히 틀어막는 것도 문제다.

이번 입시안은 자율을 강조하는 정부의 정책기조에 역행한다. 당정은 당초 거론됐던 ‘오후 10시 이후 학원 교습 금지’ 법제화 방안을 자율 원칙에 어긋난다고 배제하면서도 특목고 입시에는 규제를 가하는 모순을 드러냈다. 이런 대책으론 국가경쟁력 강화와 사교육비 경감은 고사하고 게도 구럭도 모두 놓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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