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취임전 ‘개혁대상 1호’로 檢 지목

  • 입력 2009년 5월 1일 02시 56분


불밝힌 대검… 특별조사실은 ‘등화관제’하듯 차단 30일 오후 1시 45분쯤 시작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이날 밤 늦게까지 10시간이 넘게 계속되면서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건물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조사를 받은 1120호 특별조사실은 대검 청사 11층 왼쪽 뒤에 있으며, 외부로 불빛이 새나가지 않도록 차단해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사진공동취재단
불밝힌 대검… 특별조사실은 ‘등화관제’하듯 차단 30일 오후 1시 45분쯤 시작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이날 밤 늦게까지 10시간이 넘게 계속되면서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건물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조사를 받은 1120호 특별조사실은 대검 청사 11층 왼쪽 뒤에 있으며, 외부로 불빛이 새나가지 않도록 차단해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사진공동취재단
■ 盧-검찰 악연 22년

하루 3번 영장청구-기각

재야변호사 시절 첫 인연

취임직후 ‘검사와의 대화’

“막 가자는 거냐” 갈등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검찰이 20년 이상 이어온 악연은 질기다 못해 모질기까지 하다.

악연의 시작은 노 전 대통령이 재야 변호사로 활동하던 1987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시위 도중 숨진 대우조선 근로자 이석규 씨의 보상과 부검 문제에 관여했다가 제3자 개입 혐의로 구속돼 23일간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졌다. 당시 검찰은 처음에 청구했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하룻밤에 3차례나 판사 집을 찾아가 다시 영장을 청구했다.

대선 후보 시절 검찰을 ‘개혁대상 1호’로 꼽은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취임하자마자 검찰과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판사 출신이자 기존 검찰 수뇌부보다 사법시험 기수가 한참 낮은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에 파격적으로 임명해 검찰 조직의 ‘서열 파괴’에 나섰기 때문. 이 문제를 대화로 풀어보자며 가진 ‘평검사와의 대화’는 오히려 양측에 씻을 수 없는 앙금을 남겼다. 한 검사가 노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사건과 관련해 전화를 건 사실을 언급하며 “청탁한 거 아니냐”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이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것이죠”라고 맞받아치는 아슬아슬한 상황도 있었다. 대통령과 검찰의 갈등은 결국 김각영 당시 검찰총장의 사퇴로 이어졌다.

임기 첫 해인 2003년 말에는 자신이 대검 중수부장으로 임명한 사법시험 17회 동기인 안대희 대법관이 대선자금 수사에 나서면서 궁지에 몰렸다. 이때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의 능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때로는 소름이 끼칠 정도다”라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노 전 대통령 재임 때 청와대가 검찰 수사에 사사건건 관여하는 관행을 깬 것은 공으로 평가받았지만, ‘검찰의 문민통제’라는 명분 아래 검찰의 힘 빼기를 시도했다. 이 때문에 집권 5년 내내 노 전 대통령과 검찰 사이에는 불편함과 냉랭한 기류가 흘렀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과 별도로 공직부패수사기구 설치를 추진하는가 하면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 조정문제를 꺼내들었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를 만들어 형사소송법 개정을 추진한 것도 검찰의 반발을 샀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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