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서고 싶어도 돈이 없어…” 불경기가 이혼도 막는다

  • 입력 2008년 10월 29일 14시 41분


"경제력이 없으면 이혼도 마음대로 못 해요."

A(45·서울) 씨는 아내의 외도로 괴로워하다 이혼 상담을 받았으나 이혼을 포기했다. 혼인 파탄의 귀책사유가 아내에게 있더라도 재산을 반반씩 분할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괴롭지만 아내를 용서하기로 했다.

요즘 같은 부동산 침체기에 40평대 아파트를 팔기도 어려울뿐더러 아내에게 재산 절반을 나누어 줄 경우 전셋집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자녀 2명을 돌 볼 보모를 구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다.

● 이혼은 아무나 하나

불경기에는 금전적인 문제로 이혼이 늘어난다는 것이 상식이었으나 요즘은 반대다. 위자료나 양육비를 마련하지 못해 오히려 이혼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

B(52·서울) 씨는 최근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아 아내의 수입에 의존해서 살고 있다. 아내가 회식을 핑계로 자주 술을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오자 싸움이 잦아졌다. 아내는 간섭이 심하다면서 이혼을 요구했고 급기야 가출을 했다.

30평대 집 한 채가 전 재산인 B씨는 재산 분할에다 실직을 이유로 위자료까지 물어줘야 할 처지다. B씨는 평생 가족을 부양하는데 온 힘을 쏟았는데도 재산을 나누어 주어야 하는 건지 분노를 참을 수 없지만 결국 가출한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남편의 폭력과 방치에 시달리는 아내들의 사연은 더 안타깝다. 전업 주부로 살아온 경우 '홀로서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C(36·부산) 씨는 다른 여자와 동거중인 남편과 이혼하고 싶지만 두 자녀를 키울 일이 막막하다. 해외 출장이 많던 남편은 원래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생활비도 끊긴지 오래됐다. 남편을 찾아가면 폭언과 폭력을 일삼으며 내쫓아 버렸다.

그러나 이혼을 하게 되면 현재 보증금 3000만원의 월세 집마저 빼야 할지도 모르고 남편이 재산을 숨겨 놓아서 양육비도 받기 힘들다.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해 법적 부인으로 남기로 했다.

● 이혼 상담은 늘고 이혼 건수는 줄어

실제로 이혼 상담 건수는 매년 늘어나고 있지만 이혼 건수는 줄어들었다. 이혼을 원하는 부부가 이혼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이혼 면접 상담 건수가 2007년에는 1년 통틀어 4366건이었으나 2008년에는 1∼9월에만 6718건으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이혼건수를 비교해 보면 2007년 8만3800건(1월~8월), 2008년 8만600건(1월~8월)으로 비슷하거나 줄었다. 협의이혼 전 3개월의 숙려기간을 반드시 거치게 한 '이혼 숙려제' 효과도 있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한국 남성의 전화 이옥이 소장은 "최근 이혼을 포기하는 대다수 상담자는 재산 분할이나 위자료 때문이다"면서 "배우자에 대한 극심한 분노를 느끼지만 참고 살겠다는 딱한 사연도 많다"고 말했다.

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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