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토끼처럼 속독-다독? 거북이처럼 한권 한권 정독!

  • 입력 2008년 9월 23일 02시 59분


■ 공부-논술 좌우하는 독해력 어떻게 기를까

“추석 연휴 때 아이가 책을 통 못 읽어서 오늘은 45권을 읽혔어요.(두 살 딸을 둔 엄마)”

한 인터넷 육아·책읽기 카페에 오른 글이다. 요즘 엄마들 사이에는 ‘도전 100권’, ‘도전 300권’처럼 한 달 동안 자녀에게 읽힐 책 목표량을 정해두고 매일 읽은 책 목록을 게시판에 경쟁적으로 올리는 일이 유행이다. 학교는 학교 나름대로 ‘독서통장’이다 ‘독서인증제’다 하여 책 많이 읽는 아이에게 상을 준다.

그러나 무작정 책을 많이 읽힌다고 좋은 게 아니다. 한우리독서논술의 이언정 선임연구원은 ‘다독’보다 ‘정독’을 권했다. “책을 많이 읽혀야겠다는 욕심에 ‘다독’을 강요하면 독서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지만, ‘정독’을 시키면 책읽기도 좋아지고 공부나 논술에 필요한 학습능력도 자란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정독 훈련을 해온 김효은(16·수원외고 영어과 1학년) 양과 이상은(19·한국외국어대 중국어통번역과 1학년) 씨가 좋은 예다.

○ 정독하는 아이가 공부도, 논술도 잘 한다!

김효은 양은 새 책을 펼칠 때 표지부터 찬찬히 살핀다. 제목, 작가를 보고 나면 차례를 훑어보며 이야기의 흐름을 상상한다. 책읽기의 재미를 한층 더하기 위해서다. 글을 읽을 때는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주인공의 감정을 상상하며, 중간 중간 좋은 부분에 밑줄에 긋고 생각을 메모한다. 자연히 책 읽는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익숙해지니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그 덕분에 공부할 때도 다른 아이들보다 유리하다. 김 양은 시험범위를 빨리 여러 번 읽고, 문제의 요구사항을 잘 파악해서 지문 속에서 금방 해결방법을 찾아내는 편이다.

김 양이 초등학생 시절에 딸에게 독서지도를 하다가 아예 독서논술지도사가 됐다는 어머니 이은주(42) 씨는 딸의 책을 같이 읽고 대화를 나눴다. “엄마는 읽어보니 이렇다, 효은이는 어때?”라며 딸의 느낌을 묻기도 했고, “만약 네가 이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하겠니?”처럼 해결책을 묻기도 했다. 항상 아이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준 것이다. 커가면서 이런 대화의 효과가 나타났다. 공부와 관련해서 다닌 학원이라고는 영어, 수학 단과반 뿐이었던 김 양이 별다른 사교육 없이도 수원외고 영어과에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이 씨는 “신문 기사 하나를 읽어도 문제를 폭넓게 생각하고 해결책을 논리적으로 말하는 등 문제해결능력이 생긴 것이나, 자기주도적인 습관이 잡혀서 학교에서 차분하고 생각이 꽉 찬 학생이라고 인정 받게 된 것도 전부 독서의 힘”이라며 흐뭇해했다.

이상은 씨는 논술을 잘해서 대학 합격에 성공한 사례다. 논술이 당락을 갈랐던 2008학년도 한국외국어대 프런티어 전형(논술 70%, 학생부 30%인 수시전형)에 합격한 이 씨는 현재 중국어통번역과 1학년 장학생이다.

이 씨는 책을 참으로 천천히 읽는다. 300쪽 정도 되는 책 한 권을 삼사일 내내 붙잡고 읽을 정도다. 읽다가 이해가 안 되면 다시 앞으로 넘어가서 읽고, 생각이 떠오르면 그때그때 독서기록장에 적는 게 습관이 됐다. 대학에 온 지금도 짧게는 두세 줄에서 길게는 한 장 정도의 독서감상문을 일기장에 꼬박꼬박 적고 있다.

이 씨 역시 공부와 관련된 학원은 한번도 다녀본 적이 없을 정도로 사교육과 거리가 멀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고교 3학년 2학기 수시모집 직전까지 독서논술학원에 다녔을 뿐이다. 이 학원에서는 수업시간마다 정확히 읽는 훈련부터 시켰다. 교재나 신문 사설을 꼼꼼히 정독하고, 핵심 단어나 주제문을 찾아내는 훈련이었다. 이 씨는 “평소 정독하고 메모하던 습관을 논술 시험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어 편안한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 내 아이 정독 훈련, 어떻게 실천할까?

최근 ‘독서몰입법(랜덤하우스)’을 펴낸 조미아 성균관대 정보관리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엄마 아빠가 집에서 쉽게 실천해볼 수 있는 세 가지 정독 훈련법을 소개했다.

1.여러 권의 책을 읽히기보다 한 권을 반복해 읽히라= 아이들은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 이야기에 친숙해진다. 처음에는 글만 읽지만, 반복해서 정독하는 동안 문장과 그림의 관계, 주인공의 행동, 자신의 삶과 관련된 교훈 등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는다. 부모가 성급한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책의 단계(수준)가 저절로 올라간다.

2.모르는 어휘는 모아뒀다가 사전에서 한꺼번에 찾아보라= 모르는 어휘가 나왔을 때는 형광펜이나 포스트잇으로 표시를 해두거나, 단어장에 기입해두는 것이 좋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뜻을 문맥적으로 이해하며 지나가고, 한 챕터를 읽은 후에 한꺼번에 국어사전이나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는 것이 좋다. 독서의 맥이 끊어지지 않고, 모르는 낱말의 뜻을 문맥에서 이해하는 훈련이 되기 때문이다.

3.자녀와 같은 책을 읽고 대화하라= 아이와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는 아이의 느낌이나 생각을 묻는 것이 가장 좋다. 예를 들어 “이야기가 재미있었니?” “두더지는 이 때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두더지한테 일어난 일이 너한테도 일어난다면 어떻게 할 거니?” “이 이야기의 결말을 다르게 만들어 볼까?”라고 물어볼 수 있다. 아이가 제대로 읽었는지 테스트하겠다는 생각은 말끔히 지워버리고 그저 책이 즐거워서 함께 대화를 나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