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자살 결론’ 뒤집은 ‘타살 기소’

  • 입력 2008년 8월 13일 06시 59분


“육교 추락 20대女피살증거 부족하다” 영장 기각

檢, 부검 등 1년반 다각수사… 남친 구속 이끌어내

2006년 12월 21일 오전 9시 10분경 대전 중구 산성동 철로육교에서 A(24·여) 씨가 5.5m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직접 사인은 중증 뇌손상 및 출혈성 쇼크.

경찰은 추락 당시 A 씨와 함께 있었던 남자친구 B(26) 씨를 용의선상에 올렸다. 하지만 B 씨는 “A 씨가 나와 말다툼을 하다 홧김에 투신했다”고 주장했다.

부검의는 “A 씨 목뼈 연골은 목뼈와 그 주변 조직(근육, 피부 등)의 손상 없이 부러졌는데 단순 추락에는 없는 일”이라는 소견을 내놨다. 그는 “A 씨 얼굴과 눈꺼풀, 입술 점막에 나타난 점상출혈도 질식했을 경우 나타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찰은 이런 소견 등을 토대로 B 씨에 대해 A 씨의 목을 졸라 의식을 잃게 만든 뒤 밀어 떨어뜨린 혐의(폭행치사)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직접적인 증거 부족을 이유로 기각했다.

자칫 자살 사건으로 결론이 날 상황. 이 사건을 맡은 대전지검 형사3부는 ‘시체는 말없는 목격자’라는 법의학 격언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서울대와 충남대 법의학 교수들과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시체 상태와 부검 결과, 현장 상황에 대해 더 심층적인 분석을 시작했다.

법의학 교수들은 국내외 임상 및 학술지 보고 사례를 전부 조사해 당시 부검의의 두 가지 소견에 예외가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특히 법의학의 권위자인 서울대 이정빈 교수는 “A 씨처럼 목뼈와 주변 조직 손상 없이 목 부위 연골이 부러진 경우는 은근하고 지속적인 힘으로 목을 졸랐을 때뿐”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검찰은 추락할 때 머리 등을 보호하려다 입는 상처인 ‘방어흔’이 A 씨 시체에는 없는 것을 발견해 그가 추락 당시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1년 7개월 동안의 다각적인 수사 결과를 토대로 최근 B 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속했다. 법원은 이번에는 피의자 신문도 없이 영장을 받아들였다.

이 사건을 수사한 송행수 검사는 “이번 수사 과정에서 도출한 법의학적 결론들은 단순 소견을 넘어선 연구결과여서 앞으로 유사 사건 해결에 유용하게 활용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B 씨는 “당시 상황이 기억 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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