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 느낌 주려고…” 고개 떨군 대학강사

  • 입력 2008년 7월 5일 03시 04분


인터넷에 ‘전경들이 진압거부’ 거짓글 올려 구속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을 올리고 싶었을 뿐인데….”

3일 오후 7시 20분경 서울 종로경찰서 유치장 면회실. 이날 경찰에 긴급 체포돼 4일 구속된 강모(42)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인터넷에 올린 글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말을 몇 차례나 되풀이했다.

서울 모 대학 철학과 시간강사인 강 씨는 지난달 29일 오후 9시40분경 인터넷방송 ‘라디오21’ 게시판에 ‘지쳤습니다’란 ID로 전경대원 전원이 진압 명령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는 허위 내용의 글을 올렸다.

강 씨가 올린 글에는 “상부에서는 계속 시민놈들을 개 패듯이 패라는 명령만 귀 따갑게 명령이 내려오고 있다. 서울 2기동대 전경대원 일동이 자정을 기해 시민 진압명령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등의 거짓 내용이 담겨 있었다.

글을 올리게 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강 씨는 “지난달 말부터 경찰이 폭력 행위를 하는 시위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인터넷 동영상 등을 통해 보면서 ‘경찰의 강경한 대응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비판하는 글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경찰의 과잉 진압을 비판하는 글은 너무 많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작문성 글을 올렸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내가 올린 글을 보고 사람들이 사실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줄 알았다. 인터넷 공간에선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쓰는 경우가 많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1996년부터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강의를 해 온 그는 촛불집회에는 두 차례만 참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대학 시절 운동권 학생도 아니었으며 평소 인터넷을 많이 이용하지도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강 씨는 “많은 사람은 내가 올린 글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사실은 내가 올린 글에 달린 댓글에도 나타난다”며 “단지 극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긴급체포까지 될 정도로 심각한 짓을 내가 했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되뇌는 그의 표정에는 뒤늦은 후회의 빛이 감돌았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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