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못피한 50代 운전자 ‘귀갓길 봉변’

  • 입력 2008년 6월 27일 03시 12분


시위가 격렬해져 가던 25일 오후 11시 50분경 서울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에서 황모(58) 씨 부부는 생각지도 못한 봉변을 당했다.

부인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시위대 사이를 지나가던 황 씨는 몰려든 시위대에 30분 동안 억류돼 폭행을 당했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 집으로 가기 위해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청계광장 옆 도로로 들어섰던 황 씨는 띄엄띄엄 앉아 있던 시위대를 피해 세종로 사거리로 진입했다.

황 씨는 “평소와 같이 차로 1개는 차가 다닐 수 있게 해놓았을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황 씨의 차가 자신들 옆으로 지나가자 “음주운전자다” “우리를 치어 죽이려고 한다”며 차를 막아섰다.

흥분한 일부 시위대는 “살인 미수다” “(서울광장에서 열린) 구국기도회에 참석한 ‘개독교인(기독교인을 비하하는 말)’이다” 등의 애먼 말을 쏟아냈다.

그래도 성에 안 찬 시위대는 차에 탄 황 씨를 끌어내 주먹으로 얼굴과 뒤통수를 때리기 시작했다.

이후 황 씨는 국민대책회의 관계자들에게 끌려가 자신이 지난해 퇴직한 교사이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는 설명을 해야 했다.

그런데도 국민대책회의 관계자와 시위대는 황 씨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황 씨의 부인은 그동안 시위대가 둘러싼 차 안에서 공포에 떨었다.

교통경찰관에게 넘겨져 간신히 풀려난 황 씨는 “내가 지난해까지 33년간 학교에서 정치경제, 일반사회를 가르쳤는데 이건 민주주의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황 씨는 “사람마다 관점의 차이가 있으니까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지만 자기 의사를 강요해서는 안 되고 남에게 불편을 주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황 씨의 부인은 “사람들(시위대)이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가족이 괜히 해코지 당할까봐 두렵다”며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기조차 싫어했다.

황 씨는 26일 오히려 “주먹으로 맞아 이가 아프고 차량 수리비가 10만 원 나왔지만 형사 고소 등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군중심리 속에서 사람들이 비이성적으로 행동한 것이라고 이해한다”고 말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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